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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채한울의 Music of Freedom, 그 느긋한 전진




수줍어하지만 자신의 표정을 숨기진 않는다. 인터뷰에서 사진 촬영으로 이어지는 내내 시시각각 변하는 그녀의 다양한 표정이 신기했다. 가끔은 엉뚱하고, 또 가끔은 장난스럽게, 그러면서도 꾸미지 않은 진지함과 어쩔 수 없는 솔직함이 그녀의 말투, 표정, 제스처 모든 것에서 묻어났다. 굳이 ‘채한울’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아도 누구나 아, ‘채한울’이구나 알아차릴 만큼. 하지만 가장 매력적이었던 건, 이런 그녀가 조급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쉽게 변하지 않는 현실에 발 동동 구르기보다는 자신만의 결을 지켜나가며 느긋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전진한다. 급하게 가면 놓치고야 마는 것들에 대한 확신, 그 확신으로 걸어가는 인생. 그래서 그녀가 만든 뮤지컬 넘버들 또한 빈틈없이 견고하다. 자신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주면서도 무대 위 스토리를 든든하게 이끌어나가는 작곡가 채한울. 그녀만의 넘버를 함께 감상해보자.



재미를 찾아서 


작곡가 채한울이 작업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작품들이 꽤 있다. 참신하다 못해 통통 튀는 제목의 뮤지컬 <맙소사에 간 리어왕>, 팩션 사극 <가야십이지곡>, 음악감독으로 공연을 지휘했던 19금 어른이 뮤지컬 <난쟁이들> 등, 내용도 색깔도 모두 다르다. 자신만의 결이 있다면 비슷한 느낌의 작업들을 반복할 법도 한데, 그녀는 매번 다르다. 그리고 매번 다른 틀 안에서 자신만의 재미를 찾아낸다.





그건 작곡가 채한울이 인생과 음악을 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일단 하고 보는 것. 그 과정에서 재미는 있지만, 그저 재미로만 끝나는 것과 끝까지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찬찬히 골라낸다. 피아노를 치는 것이 재밌고 즐거워서 피아노 전공으로 예고에 진학했던 그녀는 자신의 말에 의하면 끈기가 없어서 피아노를 그만두고 음악이론으로 대학에 갔다. 그곳에서 음악을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법을 배웠지만, 이 역시 (그녀의 말에 따르면) 끈기가 없어서 대학원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만난 학교 선배의 대타로 들어간 어린이극단 사다리에서 악사생활로 1년을 버텼고, 그 시간이 계기가 되어 대학원 대신 한예종 음악극창작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피아노와 음악이론 모두 그녀가 결국 선택하지 않은 선택지들이지만, 지금의 그녀가 있기까지 꼭 필요한 과정들이었다. 음악 하는 사람이 되리라 생각만 했지 어떤 음악이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일단 재밌는 걸 하다 보니,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서사가 있는 장르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안다. 그렇게 막연히 음악이 하고 싶었던 채한울은 비로소 작곡가이자 음악감독 채한울로 거듭났다.



‘진짜’를 찾아서


이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그녀에게 있어 서사를 이끌어가는 작품의 캐릭터는 무척 중요한 존재다. 곡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서사와 캐릭터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드라마의 방향을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 그녀가 만든 노래도 극 속의 인물들이 감정을 담아 부르는 노래이므로 그들을 알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들을 이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미워하기도 하며 '노래'가 아닌 캐릭터의 '마음'과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더 생생하게 들려오는 무대 위 노래는 어설프게 누군가의 마음을 흉내 낸 가짜가 아니라 살아있는 '진짜'가 되어 울려 퍼진다. 이에 대해 채한울 자신은 '진짜'와 '가짜'를 판단할 수 있을만큼 잘하는 사람이 아니며, 그저 곡 작업을 풀어내는 방식일 뿐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위해 노래를 만드는지, 어떤 노래를 만드는지 정확히 알고, 또 그것을 믿고 천천히 나아가는 그녀의 방식은 '진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믿음의 근거는 정말 단순하다. 내가 재밌고 좋아해야 남도 재밌다. 내가 이해해야 남도 그렇다. 녹록지 않은 공연 제작 환경으로 인해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게 우선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작품에 집중할 수 있고, 그렇기에 재미있게 작업해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재미는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져 딱히 결과를 바라지 않고 진행했던 작업들도 결과가 좋을 수 있었다. 우란문화재단에서 개발했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대표적인 예다. 그녀는 개발과정을 거쳐 트라이아웃 공연까지 마쳤으면서도 이 작품이 본공연까지 이어질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 하나 이 공연이 잘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좋은’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작품을 채워나갔다. 그래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상업공연으로서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천천히 걷자


이런 과정은 작곡가 채한울에게 앞으로 어떻게 곡을 쓰고, 작품을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믿고 하나씩 천천히 해나가자는 것. 그래서 만드는 사람도, 하는 사람들도, 보는 사람들도 모두 즐거울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자는 것. 물론, 즐긴다고 해서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창작의 고통은 너무나도 외롭고 힘드니까. 하지만 힘든 것보다 고마운 것이 더 많다. 작곡가가 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경험들이다. 하나의 공연을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 노력이 필요한지, 서로를 위한 배려와 위로가 얼마나 따뜻한지. 그 기쁨이 너무나도 크기에 채한울 자신이 가진 확신,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을 믿으며 느긋하고 여유롭게 걸어가리라, 오늘도 다짐할 뿐이다. 이렇게 그녀가 천천히 걸어가며 찾아내는 보물들은 그녀 자신이 그렇듯 관객을 홀리는 매력으로 무대 위를 장악하게 될 것이다. 그 자유로운 음악이 무대를 넘어서 그녀가 발 딛고 있는 세상까지 아름답게 바꾸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고 들려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