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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하는 사람, 신익균






이것은 미술일까 과학일까? 이것은 조형물일까 가구일까 혹은 조각일까? 신익균 작가의 작업을 한참을 바라보면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그만큼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한 비정형 오브제를 만드는 사람이다. 때로는 전시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구상하고 그에 맞는 조형물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마치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척척 해결사 같은 역할을 하는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스스로를 창작하는 사람이라고 담백하게 말하는 신익균 작가를 만났다.



공간과 조형을 아우르는 멀티플레이어


신익균이라는 이름의 뜻이 참 재밌다. 균등할 균, 날개를 뜻하는 익, 편다는 뜻의 신. “굳이 뜻을 풀이하자면 멀티플레이어에 가깝지 않을까요?” 농담처럼 웃으며 말하지만 실제로 그는 2013년도부터 개인작업과 공간 디자인 등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왔다. 그 가운데서 가장 흥미로운 작업은 마치 사물에 인격이 있는 것만 같은 다채로운 움직임의 조형물이다. 의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걸어 다니기도 하고, 부력을 이용해 4개의 다리가 물에 떠있는 독특한 탁자를 만들기도 했다. 불안정하지만 끊임없이 살아서 움직이는 각자의 개성을 가진 조형물. “대학교 시절 조각을 배우면서 조각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정성에 대해 늘 반문하곤 했어요. 멈춰 있는 조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움직이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러다 보니 다리가 있는 것, 불안정한 상태의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한 것 같아요.” 그에게 과학은 작업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어렵지 않은 기초적인 수준의 과학을 좋아해요. 양자역학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미시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이 흔들리고 움직이고 있다는 내용을 보고 위로를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하고 있는 작업들이 많은 경우 움직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극히 사소한 것으로부터의 출발


신익균 작가는 지극히 사소한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인터뷰 내내 그의 앞에는 낡은 노트가 놓여있었다. “보통 작업을 시작할 때 특별한 경로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럼 그것이 과연 적절하고 합당한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죠. 때로는 노트에 무언가 그리다 보면 스케치로부터 출발해서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질 때도 있고요.” 그는 미술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영감을 얻는다. 과학, 자연, 다큐멘터리 움직이고 있는 모든 것들, 친구들과의 대화, 공상 과학 만화 등등. “만화가 저에게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헌터X헌터>라는 만화책을 정말 좋아해요. 요즘도 가끔씩 꺼내 보곤 하는데 그 어느 등장인물도 허투루 된 캐릭터가 없을 정도로 공들여서 만든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누구도 단역처럼 보이지 않더라고요.” 

환경조각에서 출발해 지금과 같은 작업을 하기까지 어떤 작가들을 좋아했을까?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그 독특한 생각을 작품으로 구현해내는 작가님들을 좋아합니다. 우란문화재단 우란1경에서 열린 ‘신물지神物紙’라는 전시에 참여한 김범 작가님을 정말 좋아해요. 달리, 에셔, 보쉬도 좋아하는데, 그분들의 작품을 보면 당시에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죠.” 


공간이 가진 힘에 대하여 


신익균 작가는 2019년 우란1경에서 열린 두 개의 전시에 공간 디자인으로 참여를 했다. 그가 공간 구상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2013년 ‘아트스페이스 풀’이라는 대안공간에서 공간 매니저로 처음 일을 하게 됐어요. 공간을 관리하고 디자인하며 그것을 구현하고 만드는 것이 제 역할이었죠. 야외에 있는 규모가 큰 조형물과 작품을 만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공간을 다루는 것에도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배움의 과정을 거친 후 그는 백남준아트센터(‘TV는 TV다’), 구슬모아 당구장(‘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문화역서울 284(‘2018 타이포잔치 비엔날레 사이사이’) 등등 다채로운 성격의 공간 디자인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우란문화재단과의 첫 작업은 <스크리닝 프로젝트: 물질과 기억>이었다. “영상을 상영하는 공간을 만드는 목적이 뚜렷한 프로젝트였죠. 관객들이 영상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어요.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작은 부분의 연출에 신경을 많이 기울였죠.” <터 play:ground>는 믹스라이스(조지은, 양철모)와 자티왕이 아트 팩토리(Jatiwangi art Factory)의 영상, 설치, 드로잉 등의 작품을 통해 각자의 터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어주고,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매개로써 ‘놀이’를 바라보는 의미가 담긴 전시였다. “공동체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전시였어요. 그것을 살펴보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갔었죠. 거기서 봤던 풍경과 경험, 독특한 상태들을 공간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실제로 인도네시아에서 많이 사용하는 대나무로 전시장의 구조물을 만들었어요. 믹스라이스 팀과 정지영 큐레이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저런 구성을 떠올렸어요. 우란1경에서 열린 전시의 대부분을 봤던 것 같은데 공간이 가지고 있는 힘이 센 편이라 조금은 그곳을 자유롭게 날것에 가까운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움직이는 조각, 흐물흐물한 조각


신익균 작가는 현재 글림워커 픽쳐스라는 작가 그룹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공동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회사라고 할 수도 있어요. 작가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계속 작업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만든 곳이죠.” 요즘 그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조각이 허물어지는 상태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흐물흐물한 조각이라고 해야 할까요? 조각을 떠올리면 기본적으로 딱딱한 덩어리를 생각하지만 요즘엔 그것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상태에 대해 생각하곤 해요. 한편으로는 나로부터 출발하는 작업에 대해서도 고민하죠.” 그가 보여준 작업 사진에는 두 대의 선풍기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과연 제대로 된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중간에서 의미 없이 흩어져 버리는 바람으로 그걸 표현해 보고 싶었죠.” 그가 지금까지 작업을 하면서 들었던 인상적인 코멘트는 시간성에 대한 화두다. 똑같은 작품을 지금, 10분 뒤에, 내일 본다고 했을 때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는 작품. 그래서 그 순간에 더 집중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작업. 그의 작품은 대부분 불안정하고 변화하는 상태를 계속해서 겪어낸다. 마지막으로 작가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작업을 다듬거나 매듭짓는 일 대신 기필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 더욱 매진하고 싶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오랜 숙고와 연구의 시간을 거친 신익균 작가의 다음 챕터가 무척 기다려진다.


글: 김아름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