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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희 작곡가·사운드 아티스트의 World Wide Sound



가장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음악가, 공기와 소리의 아름다움 그리고 신비로움을 담는 사람, 우리가 몰랐던 세계를 들려주는 아티스트. 사운드 아티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 중인 조은희를 만나고 떠오른 단상이다. 소리와 음악으로 이미지를 창조하고 음악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향해 부지런히 달려가는 그를 만났다.

어느 클래식 전공자의 무한 도전 

조은희 작곡가의 커리어는 조금 독특하다. 클래식 작곡으로 시작해 음악 테크놀로지로 넘어간 계기가 궁금했다. “20대 중반에는 아방가르드하고 실험적인 음악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대학교를 졸업한 2006년도는 국내에 사운드 아트가 이제 막 붐이 일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당시에 백남준 아트 센터가 개관하고 미술계에서도 사운드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가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어요. 휴학을 하고서 그런 새로운 분야의 공연을 찾아다니며 ‘이런 세계도 있구나’ 알게 되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전자 음악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을 공부해서 그런지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으로부터 매력을 느꼈어요.” 하지만 그의 도전은 쉽지 많은 않은 과정이었다. 평범한 작곡과 학생에서 마치 공대생처럼 완전히 다른 분야로의 이동이었으니까. “프로그래밍을 새로 배웠는데 이 분야는 단순히 악기처럼 누른다고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었어요. 쉼표 하나만 잘못 써도 소리가 안 나오니까 처음엔 스트레스도 상당히 받으면서 공부했어요. 사고방식을 완전히 다르게 변화시켜야 했죠.” 영향받은 음악가가 있는지 묻자 베토벤과 칼 하인츠 슈토크 하우젠 이라는 전혀 다른 두 이름을 말했다. “자신의 인생이 곧 음악이었던 베토벤을 존경해요. 그리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 슈토크 하우젠에게서도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죠.”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음악가 

그가 하는 음악은 우리가 알던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다. 대표적으로 피아노와 랩톱을 사용해서 공연을 하는데, 완전히 새로운 소리를 창조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 주변에서 녹음할 수 있는 소리를 따다가 마치 콜라주처럼 조합하고 변형하기도 한다. 때때로 영상 작가나 국악 전공자 등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와 적극적으로 협업한다. 음악과 비음악의 경계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며 익숙한 것들로부터 가능한 멀어지게 한다. 관객들로부터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흥을 선사한다. 스스로 대표작이라 생각하는 공연이 있을까? “2013년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제 색깔을 조금씩 낼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2014년도에 공연한 <송 에 뤼미에르(Son et lumière)>는 제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죠.”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 선정작이었던 이 작품은 극장에서 진행한 새로운 형식의 공연으로 빛과 소리를 활용하고 6명의 영상 작가와 협업하여 당시 혁신적인 공연으로 주목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조은희 작곡가는 2016년도부터 소리지도, 일명 사운드맵이라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오고 있다. 특정 장소에서 영감을 받아 주변의 소리를 채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곡가의 상상력이 들어간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했다. <수원화성 소리지도(2016)>, <소리로 그린 지도(2017)>, 그리고<태백산맥 소리지도(2018)>까지 쭉 연작처럼 이어져오고 있다. 





파리와 베를린에서 생긴 일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이런 작업은 해외로까지 뻗어 나아간다. 우란이상 2019 해외연구지원을 통해 파리와 베를린을 다녀왔다. 앞서 그는 2018년도 연극 <네 번째 사람>과 2019년도 <THE MAJORITY: SOUTH KOREA>의 음악감독으로 우란문화재단과 인연을 맺은 적 있었다. 주변 지인들의 추천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도전하게 됐다고. 음악적으로 의미 있는 공연과 미술관을 찾아다니고, 현지에서 음악가와 교류를 나누고, 소리 지도 프로젝트의 연장선 상에서 무수히 많은 소리를 채집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단기간에 많은 것을 흡수하고 배우고 경험했다. 그 시간들이 어떤 기억을 남겼을까? “한국에서 미리 연락해둔 전자 음악가 가엘(Gael)과 파리에서 만나게 되어 그 음악가과 인텐시브 하게 같이 작업을 했어요. 제가 그동안 해온 것들, 가지고 있는 생각과 비교하면서 우리가 서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로를 받은 것 같아요. 언어는 달라도 음악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고 했던 시간들이 좋았어요. 그리고 그 친구의 소개로 굉장히 독특한 공연도 봤는데 지하 벙커를 따라가며 경험하는 강렬한 사운드에 압도 당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센 강 근처 작은 카페에서 열린 여성 작곡가 8팀으로 구성된 공연도 정말로 인상적이었고요.” 
베를린 함부르크 반호프 현대 미술관과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 파리 오르세 미술관, 그리고 베를린에서 열리는 전자 음악 축제인 아토날 페스티벌까지. 파리와 베를린에서의 추억을 듣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토록 강렬한 경험이 앞으로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공연 형식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어서 미술관도 많이 찾아다니고 독특한 공연도 열심히 봤어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파리와 베를린에서 얻은 소리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공연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조은희 작곡가는 유럽에서도 계속해서 소리를 채집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오히려 귀가 더 잘 열리고 좋은 생각도 많이 일어나곤 하죠. 예상하지 못했던 공간에서 들리는 새소리, 바람소리,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는 저에게 많은 영감을 줘요. 이번에도 도시에서 들리는 소음을 많이 채집했어요. 버스 정류장에서 들리는 기계음, 파리 지하철의 소리, 카페에서 커피 콩을 가는 소리처럼 말이죠.” 여행을 떠날 때 그의 손에는 언제나 녹음기가 쥐어져 있다. 





음악과 사람은 나의 힘 

최근에 그에게 영감을 준 음악가는 누구일까? “보통은 주변 동료로부터 좋은 영감을 많이 받아요.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음악을 할 수 있는 원동력도 결국 좋은 사람과 동료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죠. 우리 같이 끝까지 살아 남자고 서로를 격려해요.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그것을 향해서 계속해서 한걸음 씩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무한 가능성의 음악가. 그가 그리는 미래의 음악 지도는 어떤 모습일까? “사운드맵 프로젝트는 장기적으로 10년 이상을 바라보고 하고 있는 프로젝트예요. 그리고 보이스 퍼포먼스도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앞으로는 제가 했던 것을 결합해서 총체적인 음악극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곧 다가오는 연말, 조은희 작곡가는 또 한 번의 실험적인 공연 <포스트 음악극 “시”>를 펼칠 예정이다. 사운드와 문학적인 언어가 만나면 과연 어떤 화학 작용이 일어날까? 궁금하다면 12월 28일 문래예술공장으로 향해보는 것도 좋겠다. 

글: 김아름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