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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중 건축가의 Infinite Challenge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7길 11. 당신이 그 앞을 지나간다면 반드시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12층 높이의 건물 위로 층층이 쌓아 올린 발코니, 마치 작은 블록을 켜켜이 조립한 것 같은 독특한 형태의 조형물처럼 보이는 모던한 건축물. 작은 골목길을 떠오르게 하는 아케이드,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추고 싶은 작은 정원. 2018년 10월 개관한 우란문화재단 사옥은 어느새 성수동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호불호 없이 모두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리게 만드는 이 건축물을 만든 사람은 건축가 김찬중. 그가 이끄는 더시스템랩은 우란문화재단 사옥 6층에 위치해있다. “건축가가 직접 설계한 건물에 들어온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죠.” 평소 드라마를 즐겨보고 요즘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있다는 그가 소년처럼 웃으며 말했다. “<신사의 품격>이란 드라마 혹시 보셨나요? 거기서 건축가로 등장하는 배우 장동건 씨가 클라이언트를 데려와서 아파트 단지를 보여주며 ‘저도 여기에 삽니다’라고 말해요. 그러면 클라이언트가 ‘음 그럼 계약하지’라고 말하죠(웃음). 이 건물은 저희에게 살아있는 포트폴리오나 다름없죠. 저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큰 건물입니다.” 


태도가 건축이 될 때  

실험적인, 예술적인, 위트 있는, 도전적인. 김찬중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다. 이번 작업에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성수동 고유의 개성이었다. 공장과 공방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여전히 작은 골목길 사이로 수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자리 잡은 동네. “성수동이라는 문맥을 더 강화시킬 수 있는 방향을 고민했어요. 성수동이 가진 고유의 결을 살리는데 중점을 두고 직원들과 동네를 걸으며 계속 사진을 찍으며 이미지를 수집했죠. 약 5천 200평 규모의 건물을 지으면서 태도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문화재단은 공익사업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곳이기 때문에 자기 완결적인 폐쇄적인 건물을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건물이 지역 사회에 들어왔을 때 주변에 보탬이 돼야 하니까요. 이 주변에 공연과 전시를 위한 전문적인 시설은 거의 없죠. 어떻게 보면 최초의 문화 공간인데 하나의 플랫폼으로서 공공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전과 새로움은 나의 힘

김찬중 건축가는 실험적인 소재를 과감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인 한강시민공원 보행자 통로인 ‘토끼굴 프로젝트’, 삼성 래미안 갤러리, 가로수길 MCM 파사드 등의 건축물을 지을 때 플라스틱, 그중에서도 폴리카보네이트라는 낯선 소재를 사용했다. 그는 언제나 건축에서 산업적인 요소를 적재적소에 기발하게 찾아내곤 했다. 우란문화재단 사옥에도 세로로 홈이 파인 콘크리트를 사용해 건물에 독특한 텍스처를 부여했다. 햇빛이 표면을 비출 때 건물은 한결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 소재는 고강도 스티로폼을 공장에 직접 보내서 깎아 만든 거푸집으로 산업 분야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완성할 수 있었다. “건축은 홀로 존재하는 산업이 아니라 종합적인 산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더시스템랩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이유는 건축 설계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타 산업과의 지속적인 협업 관계를 만들어가기 때문이죠. 저희가 하고 있는 방식은 일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예요. 새로운 소재를 새로운 방식으로 구축하고 그것이 앞으로 5년 뒤, 10년 뒤쯤에 굉장히 중요한 건축의 부분이 될 수 있음을 먼저 실험해서 세상에 내놓는 거죠.”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통해 어렵게 얻은 결과물을 나누고자 한다. 특허를 내거나 기업 비밀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오픈 소스로 만들어 공유하기를 원한다. 다음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더 잘 사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또한 제조업 한 분야에서만 오래도록 한 우물을 파온 장인들을 재조명하고 싶다고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철근을 깎고 플라스틱 틀을 찍어온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기록으로 남겨 놓는 도큐멘테이션 작업도 준비 중에 있다. 





건축적 상상 그리고 도시의 미래 

요즘 그가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해외에서도 이미 실험하고 있는 분야이긴 한데 로봇을 사용해서 건축하는 것을 테스트해보고 있어요.” 그가 그려보는 먼 미래의 이야기는 귀를 솔깃하게 했다. “평소에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해서 자주 봐요. 그런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미래에 대해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미래의 스마트 시티는 어떻게 변할까요? 저는 외형은 거의 안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환경을 컨트롤하는 방향으로 미세하게 도시가 변할 수 있겠죠. 도시 전체가 스캐닝 되고 발전하면서 전체적으로 데이터화되고 예전보다 훨씬 환경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갖게 될 수 있겠죠. 결국 마이크로 커스터마이제이션(Customization, 고객화)의 시대가 올 겁니다. 특정 사람에게 최적화된, 한 개인을 위해 만들어진 프로덕트 개념이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건축도 그 자체가 유기체처럼 살아 있어야 하죠. 유기적으로 변할 수 있는 건물이 미래에는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세상에 없는 유일무이한 건축 

김찬중 건축가가 만들어온 포트폴리오는 다채롭다. 2006년 제10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어 주목을 받았고 201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초청으로 아트 파빌리온을 디자인하여 재조명 받았다. 국내 최초의 누드 크로키 화가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예술적인 면모를 마치 일상적인 풍경처럼 친근하게 받아들였고 사람의 아름다운 신체처럼 우아하고 전위적인 곡선에서 좋은 영감을 받곤 했다. 한국 건축계에 없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쩌면 건축과 예술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점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시킨 그의 포용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울릉도 코스모스 리조트, 행복나눔재단 사옥, 2018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은 서울 삼성동 KEB 하나은행 ‘플레이스 원’, 가우디 건축을 닮은 한남동 오피스, 서울 식물원 등 김찬중 건축가는 그동안 전방위적으로 다채로운 분야의 건축물을 설계했다. 그에게 언젠가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꿈의 분야가 있을까? “제일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납골당이에요. 추모 시설은 그 의미가 남다르죠. 마지막 집이라는 개념의 그 공간을 언젠가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종교 시설을 못해봤네요.” 지금도 여전히 서울 곳곳에는 김찬중의 건축 세계가 완성되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에 대해 물었다. 성수연방 아크앤북에서 우연히 발견한 귀여운 책 <힙한 생활 혁명>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생각의 탄생>이란 두툼한 책도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책이라고. 두 권의 책과 함께 유쾌한 어느 건축가의 취향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글: 김아름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