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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지아 작가의 Another World




우란문화재단의 기획전시 <신물지>는 잔잔하게 반향을 일으켰다. 신물지(神物紙), ‘신성한 물건, 한지’라는 의미의 이번 전시는 근대화 과정에서 지워진 민간신앙과 전통적 삶의 세계관을 확장 시켜주는 기회였다. 전통 장인들이 만든 한지 공예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고 이를 현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동시대 작가들의 의미 있는 작품은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이유지아 작가의 <와해경(瓦解經)-떠다니는 그림자> 설치 작업도 그중 하나. 4개 채널 영상 설치로 구성된 작가의 작품은 마치 이글루처럼 생긴 재단을 형상화 한 공간 안에 몸을 쏙 숨긴 채 좌식으로 앉아서 기묘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했다. 충남 태안에서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은 법사의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과 그가 전통신앙의 의례인 설위와 설경하는 장면들이 어렴풋이 그림자로 표현되는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10분 남짓 펼쳐진다. 영상 안에는 법사가 ‘앉은굿’에서 사용하는 무구가 직접 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그림자로 보인다. 작가는 단순히 무속신앙을 기록하는 다큐가 아니라 이것을 게이트 삼아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키는 비전 같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가에게 작업의 출발점에 대해 물었다. “고대의 세계관을 리서치를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설위설경을 발견했죠. 와해경(瓦解經)이라는 이름은 제가 지은 것이에요. 와해라는 것 자체가 어떤 균열이 생겨서 기왓장이 부서지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저는 경이라는 것을 통해서 어떤 세계가 깨지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설위설경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실이 진짜로 실존하는 현실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더라고요. 설위설경을 게이트 삼아 진짜 현실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설위설경 – 시간 없는 시간의 사유

작가는 이번 전시 위해 큐레이터와 끊임없는 공부와 공유의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신물지(神物紙)’는 전시에 참여한 작가와 작품 뿐만 아니라 기획이 돋보이는 전시로 호평 받았다. “우란문화재단과의 세 번째 작업이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가장 깊숙이 주제에 파고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윤주 큐레이터와 전통 신앙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각자 공부한 내용을 공유했어요.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당시의 세계관이 정말 넓었다는 것이죠. 우리는 지금 땅에서 하늘 정도까지 본다면 당시에는 지상부터 우주까지 바라보았죠. 저는 결국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세계를 인지시키고 관계 맺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설위설경은 거기에 딱 들어맞는 명백한 소재였어요.” 설위설경이란 낯선 이름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법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설위설경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는 것이라고요.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적이고 초자연적인 사건이나 장면에 대한 체험을 지칭하고 또한 상상력, 투시력, 예지력을 함께 가지고 있죠. 고려 시대부터 시작되어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설위설경은 기록이자 기억이라고 할 수 있어요. 법사들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설위설경 아카이브는 마치 시간 없는 시간의 사유 같았죠. 시간이 일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한 공간에서 마구 뒤섞여 돌아가는 상태랄까요. 설위설경을 통해 시공간의 종속성에서 벗어나서 다른 방식으로 시공간의 관계를 맺도록 생각을 전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지금, 여기, 그리고 현재를 고민하다

이유지아 작가의 신작 <와해경(瓦解經)-떠다니는 그림자>는 “지금 여기, 현재 나는 무엇을 보고 있지?”라는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작품이다. 계속해서 물이 떨어지는 인공 폭포를 배경으로 중력에 이겨내며 쉼 없이 점프를 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지금 발 디디고 있는 현실을 사유하게 만든다. 작가는 2017년에도 우란문화재단과 작업을 했다. 제 10회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 ‘금강비 (金剛比)’에서는 한국 전통 건축물의 도면과 그래픽의 조합으로 콜라주 했다. 이 작업에 대해 작가는 “금강비는 삼라만상을 자연으로 치환하여, 우리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그 자연과 조화되어 살아가는 이상적인 방법을 구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해 우란기획전 <율동감각>에서는 ‘바람의 눈’이라는 작품을 박승순 작가와의 협업으로 완성했다. 당시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한국의 창을 모두 찾아봤더니 굉장히 다양한 형태들이 있었고 그것을 그래픽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창의 아름다운 비율과 형태를 이미지화 시키는 작업을 했어요. 자연 풍경 이미지들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관객들로 하여금 창 안에서 그것을 바라보도록 했죠.”



시간과 깊이가 만들어 낸 예술

작가는 평소 세계를 이루고 있는 많은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유지아 작가는 언제나 오랜 시간을 두고 깊이 있는 연구를 기반으로 작업을 해왔다. 폭넓은 리서치를 바탕으로 전통을 재해석하고 동시대성을 고민하는 우란문화재단과의 협업은 작가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우란문화재단과의 작업은 의미가 남달랐죠. 한국에서 터부시하는 민간신앙에 대해 길게 연구하면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작가로서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유지아 작가에게 올해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9월 말에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임민욱 작가의 기획으로 젊은 작가들이 모여 기획 전시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어제도 치열한 회의를 하고 왔어요. 형태적으로는 영상 2개를 설치해서 관람객이 그 사이에 끼어서 무언가를 바라보게 하는, 영상 설치 작업이며 동시에 관객이 퍼포머가 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어요.” 또한 작가가 가장 오랜 시간 고민해온 2015년도 작품 <환상방향>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 작품은 독일어로 둥근 원의 ‘Ring(링)’과 걷는 다는 ‘Wanderung(반데롱)’을 합친 등산 용어로 등산 중 짙은 안개 또는 폭우나 폭설 등의 악천후로 인해서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같은 장소를 맴돌며 방황하는 현상을 말한다. “오랫동안 고민해온 주제인데 언젠가 꼭 해결을 보고 가고 싶은 작업이에요. 처음 전시를 선보인 후에도 2년 동안 다시 연구를 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작업하고 있어요. 올해 말에는 꼭 이 주제로 개인전을 해보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작가에게 창작의 원동력이 찾아오는 순간이 언제인지 물었다. “작가들은 항상 궁금한 것이 많아요. 궁금해서 찾아보다 보면 뭔가 툭툭 튀어나오곤 하는데 그것이 이미지일 수도 텍스트일 수도 있어요. 그러면서 마치 형광등을 켠 것처럼 굉장한 스파크를 일으킬 때가 있는데 아마 그 순간이 원동력인 것 같아요.”

글: 김아름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