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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슬기 작곡가의 Climax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시대의 명곡 ‘가시나무’의 한 구절이다. 앞 글자 하나만 바꾸면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다. ‘인스타그램’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지금 여기 우리들의 이야기, 창작 뮤지컬 <차미: 리부트>는 SNS 세상 속 이야기를 다룬다. 현실에서는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이지만 SNS 속에서는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성장과 변화를 드라마틱 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지난 4월 28일~30일 성수동에 위치한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의 객석은 빈틈없이 빼곡했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관객들은 변화무쌍한 스토리 전개와 배우들이 펼치는 열연에 푹 빠져있었다. 무엇보다 귀와 마음을 울리는 음악의 힘이 강렬했다. 발라드, 댄스, 심지어 힙합까지 아우르며 놀랍도록 귀에 쏙쏙 감기는 열아홉 곡을 만들어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지난 4년 동안 뮤지컬 <#Cha_Me>와 함께 동고동락한 작곡가 최슬기. 반짝이는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공존하던 어느 날 그에게 만남을 청했다.



밝은 세계, 유쾌한 세상  


시작은 2016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뮤지컬 창작자의 지속적인 창작을 위한 단기 교육 프로그램인 ‘시야 플랫폼: 작곡가와 작가’에서 최슬기 작곡가는 조민형 작가와 함께 이야기의 씨앗을 함께 심었다. 두 사람은 뱀파이어병으로 햇빛 아래 나가지 못하고 칩거하는 사람의 이야기부터 세상의 온갖 소재를 떠올렸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밝은 세계에서 서로 마음이 통했다. 최슬기 작곡가가 운을 뗐다. “작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서 진짜 자신의 삶을 찾는 이야기 말이죠. 처음에는 어두운 방향으로 글을 쓰고 싶어 하셨는데 제가 밝은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어두운 작품을 하면 제 삶도 같이 우울하고 무거워지는 기분이더라고요.” 최슬기 작곡가는 자신이 보고 자라온 추억의 디즈니 만화로부터 힌트를 얻었다. “제가 워낙에 디즈니 만화를 좋아했어요.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처럼 밝고 경쾌한 음악과 감성을 토대로 곡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전문 멘토와 함께하는 마스터 클래스, 작품을 실제로 녹음해보는 과정 등을 통해 두 사람은 공연에 대한 밑그림을 천천히 그려나갔다. 






나와 당신과 우리의 이야기 


그렇게 시작한 뮤지컬의 당시 제목은 <#Cha_Me>, 차미호라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열정을 다해 개발한 대본과 음악을 바탕으로 작은 이야기가 무대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7월 3일, 4일 이틀 동안 뮤지컬 <#Cha_Me> 트라이아웃 공연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최슬기 작곡가는 4년 동안 ‘차미’에만 집중했다고 말한다. 작품을 통해 도리어 에너지를 받았다고 말한다. “극 자체가 밝고 경쾌하고 코믹해서 인지 곡을 만드는 과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연습실에 가서 배우들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기분이었어요. 뭐랄까 저에게 힘이 되어준 작품이죠.” 최슬기 작곡가가 뽑은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무엇일까? “’주인공 인적 없었던 내 인생 솔로 곡마저도 이제야 부르네’, 그 대사가 생각나네요. 보통의 경우 주인공이라면 첫 번째 혹은 두 번째쯤엔 솔로 곡을 부르곤 하는데 주인공 미호의 솔로 곡은 9번째에 시작하죠.” 그녀는 이번 작품을 통해 힙합이란 새로운 장르를 알아가기도 했다. 가장 수정이 많았던 곡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평소 낯설었던 힙합 장르 음악을 인생 최대치로 들으며 ‘스웨그’ 넘치는 장면을 완성했다는 후문이다. 작곡가의 의도를 완전히 잘 찾아서 더욱 맛깔스럽게 장면을 살려준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한 편의 뮤지컬이 완성되기까지 


뮤지컬 <#Cha_Me>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2017년 첫 공연 후에 드라마적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공연팀은 대본과 음악의 수정 및 보완 작업을 거쳤다. 특히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클라이맥스 부분은 여러 번의 고민과 수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공연 후 아주 작은 의견도 소홀하게 넘기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부터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시길 클라이맥스는 여러 번 써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첫 공연 이후에 미호가 좀 더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방향으로 수정 작업을 거쳤죠.” 이전 공연과 비교해서 음악은 한층 더 풍성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살아났다. 지난 4월 열린 공연에서는 8인조 밴드 편성으로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한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더 나은 결과를 향해 달려나간 점은 공연 팀 모두에게 큰 원동력이 되었다. “우란문화재단에서 참여해온 일련의 과정을 통해 창작자를 최대한으로 지지해주고 지원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희들의 판단이 언제나 100 옳다고 할 수 없지만 창작자들이 해보고 싶은 방향과 의도를 존중해주는 분위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생각하고 판단한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인생은 서른부터 반전 있는 삶


사실 최슬기 작곡가의 삶도 뮤지컬처럼 드라마틱 한 반전이 있었다. 스물아홉, 그녀는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다르게 바꾸었다. 공대를 나와서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던 것.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계속 쳤고 교회에서 반주자 생활도 했었어요. 음악을 굉장한 업으로 생각했다기보다는 동네 아이들 가르치는 피아노 선생님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으니까요.” 결국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음악극창작과에 도전했고 2011년도 신입생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창작 뮤지컬 <명동 로망스> 이후 <#Cha_Me>로 두 번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조민형 작가와는 대학원 동기 사이다. 두 사람은 마치 핑퐁처럼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서로가 첫 독자이자 리스너로서 좋은 호흡을 맞춰오고 있다. “작가님이 가사를 보내주면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봐요.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연기하면서 마치 제가 배우가 된 것처럼 대사를 치다 보면 그 인물이 어떤 생각과 기분으로 그런 말을 했을지 이해가 가요. 그리고 그걸 대사로 했을 때 적당한 빠르기,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운, 쉬어야 할 부분이 하나씩 잡히죠. 대사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템포와 톤을 정하고 리듬과 멜로디를 만들어 나가요.” 

 

좋아하는 뮤지컬이 있는지 묻자 <인 투 더 우즈>라는 답이 돌아왔다. 특히 음악을 만든 스티븐 손드하임 (Stephen Sondheim)에 대한 놀라움을 신나게 설명했다. “작품을 분석하는 과제가 있어서 보게 된 작품인데 어떻게 이렇게 썼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분이 쓴 곡의 특징 중 하나가 대사하듯이 리듬을 만드는 것이죠. 배우가 노래를 하고 있는데도 말하는 것처럼 들려요. 듣고 있다 보면 나도 언젠가 저렇게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슬기 작곡가의 희망 박스엔 여전히 하고 싶은 것들이 가득하다. “언젠가 가족 뮤지컬도 해보고 싶어요. 아이들이 있는 창작자는 늘 그런 로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란문화재단에서 했었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공연처럼 피아노 중심으로 음악을 이끌어가는 단출한 악기구성의 공연도 해보고 싶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차미: 리부트> 공연이 좋은 제작사를 만나서 다시 한번 무대 위로 올라갔으면 합니다.” 그녀의 바람대로 우리 모두의 모습을 조금씩 닮은 차미호의 드라마를 공연장에서 다시 한번 만날 수 있기를! 


글: 김아름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