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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 작가의 Design a Sensation






꼭꼭 숨겨둔 케케묵은 감정과 아련한 향수를 불러오는 이름 모를 기억들, 마음속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는 삶의 한 부분. ‘소리’는 그것들을 가끔 우리에게 꺼내어 보여준다. 그렇게 소리를 통해 그려지는 지난날의 추억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왜 이리도 반가운지. 우리의 감각을 한순간 일깨우는, 그것이 바로 소리다. 주말의 어느 늦은 오후, 그를 만난 자그마한 공간에도 요란한 소리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위이이잉. 아직 쌀쌀한 날씨에 천장에 매달린 난방기가 쉬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내뿜었다. “지금 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난방기 소리 들리세요? 너무 일상적인 소리라 지금까지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테지만 음소거한다면 얼마나 큰 소리였는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인식하고 나니 답답하게 들리기도, 소리만으로도 건조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이런 심리적인 디테일에 관심이 많아요.” 그의 말에 누군가 볼륨을 키운 것 마냥 난방기 소리가 귓가에 더욱 크게 울렸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소리가 가진 힘이다. 지금부터 소리에 순간을 담아내는 그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보자.



‘배치’를 디자인하다


누구에게나 절망의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무기력함에 쉽게 굴복하고 만다.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 절망을 느끼며 한없이 나의 감정 속으로 침잠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정직한 절망의 바닥에는 희망이 도사리고 있다. 그도 그 정직한 절망을 만난 적이 있었다. “원래는 음악을 했었어요. 듀오로 같이 활동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막 활동을 시작해 보려는 찰나에 친구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하게 됐죠. 갑자기 내 앞에 길이 사라진 기분, 한마디로 절망적이었어요. 매일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서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가만히 누워있으니 어느 순간 주변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냉장고의 팬 돌아가는 소리, 창밖에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 이런 일상적인 소리가 아슬아슬한 삶의 경계에 있던 그에게 ‘살아있다’는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이때 그는 음향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래퍼에서 음향 디자이너로. 그렇게 그의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창조는 여러 가지 요소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다’. 미국의 기업가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오늘날 완벽하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자신의 경험에 따라 주어진 재료를 ‘어떻게 둘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21세기 창조의 개념과 더 가까울 것이다. 어떤 모형을 어디에 둘 것인가, 어떤 단어를 어디에 둘 것인가. 이를 통해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창작이나 창조의 정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가 ‘디자인’이라는 표현을 좋아하는 이유는 디자인이 배치의 감각이랑 닿아있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감각을 디자인이라는 말이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극의 어떤 부분을 소리로 표현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어떤 부분은 빛으로, 어떤 부분은 배우의 연기로 표현할 수 있듯 소리도 소리만의 역할이 있으므로 극과 소리를 어떻게 조응시킬 것인가에 대해 동료들과 충분한 이야기를 나눈 다음 그에 맞추어 소리를 배치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논리적인 납득’ 아래 진행된다. “스스로 이해해야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작업자들이 그렇겠지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수인 거죠. 예를 들어 여기에서는 A라는 소리가 나는데, 저기에서는 B라는 소리가 나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 채 실행한다면 기계적인 작업에 불과하니까요.” 그래서 먼저 왜 이 소리가 여기에 들어가는지, 이 작업에서 소리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기초적인 맵을 그리고, 탄탄한 구조를 세운 뒤 재료를 모은다. 그다음 세워진 구조에 따라 재료를 가공하고 배치한다. 이러한 작업에 있어서 하나 주의하는 점은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정서적인 감정을 불러오는 것을 경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소리라는 게 분명히 어떤 정서를 자극하기 쉽잖아요. 특히 약간의 음악적인 요소가 들어간다면 더욱더 그렇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조명도 들어오고, 배우의 연기도 있을 때, 이 소리를 통해 정서적인 과잉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경계해요.”







마음을 듣다


음향 디자이너로서 작업을 시작한 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 협업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다. 그들과의 작업은 그가 어느 정도 안정된 기반을 다지는데 큰 토양이 되었다. 음향 디자이너로서의 작업은 대부분이 ‘협업’이었고, 그는 대화를 나누면서 무언가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의 소중함을 알기에 ‘협업자’로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그러다가 관심 있는 것들이 더러 생기면서, 2016년도부터는 개인 작업을 하나씩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을 받아 실행하는 작업도 생겼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꾸만 전전긍긍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 바로 그 시기에 우란문화재단의 우란이상 레지던스 연구 프로그램을 함께하게 됐다. 


명확한 포지션 없이 팀 체제로 진행된 프로젝트. 최종 결정권자가 있는 것이 아닌 형태에서 분야도, 취향도 모두 다른 네 명이 모여 소통체계를 구축해 가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즐거웠다고 한다. “물론 더 좋은 결과를 위해 밤잠 설치며 고민하기도 하고,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는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근데 이런 과정은 공동창작에서 필연적인 것이죠.” 끊임없는 대화, 치열한 고민. ‘같이 한번 머리를 맞대고 싸워보자’고 했으면 모름지기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그저 서로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작가에게 작품, 그리고 작업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신성시되지는 않아야 하는 것 같아요. 마음이 너무 앞서가서 큰 욕심을 부리거나, 서로를 할퀴지 않고, 그저 성실하게 쌓아 가는 것. 그거면 되는 거죠.”

매일 같이 오랜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마음에 귀 기울였다. 부딪힐 때도 있었지만 언성을 높이거나 서로의 감정이 상하는 대화를 나눈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런 시간을 거치고 나니 상대방이 했던 말을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의견이 충분히 납득되기 시작한 거예요. 그 의견을 전제로 내 의견을 덧붙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의 생각이 조금씩 스며들어 공통의 그라운드를 단단히 만들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이 프로젝트가 네 명 모두에게 100 마음에 드는 작업은 아닐 수 있겠죠. 사실 그런 작업은 불가능하기도 하고요. 얼굴도, 가치관도 모두 다 다른 사람들이 모인 거니까요. 근데 상호존중 아래 바닥을 잘 만들어놨기 때문에,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는 비로소 지금 시점에서 가지기 어려운, 그러니까 작업자로서 코가 더 깨지고, 몇 년 정도 더 해야 가질 수 있는 그런 여유를 배웠다.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의연함. “분명 다음 작업을 했을 때, 이 과정의 경험들이 제가 보다 여유 있는 접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







멋진 비엔나 왈츠를 추기까지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답을 내어놓던 그가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 한참을 고민했다.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 없어서도, 미래에 가고자 하는 방향이 불분명해서도 아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는 그저 ‘잘’살고 싶다고 했다. 한 인간으로서, 참 명쾌한 답이 아닐 수 없다.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고양이 요람』에 나오는 ‘독특한 여행 제의는 신으로부터의 댄싱 레슨이다’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맞닿아 있는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우란이상 레지던스 연구 프로그램도 저에게는 또 하나의 댄싱 레슨이었죠. ‘춤 이렇게 한번 춰볼래?’하는. 사실은 되게 서툴기 때문에 누군가의 발을 밟기도 해요.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서툴게 스텝을 밟으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이 사건, 저 사건과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아무리 서툴지라도 계속해서 춤을 추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럼에도 누구의 발을 밟고 부딪힐 수 있으니 조심해서 살아가는 것.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더 멋스러운 춤을 추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그것만큼 ‘잘’사는 방법이 또 있을까? 6년 차 음향 디자이너. 지난 6년을 ‘짧은 기간’이라고 표현한 그의 말마따나 아직 그가 경험해야 할 것은 많다. 부딪혀야 할 일도, 서툰 일도 많겠지만 어쩐지 목소, 그는 참 ‘잘’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삶의 공간을 가득 메운 소리를 넘어 들리지 않는 무언가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그가 아주 멋지게 비엔나 왈츠를 추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글: 노연주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