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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터 최안나의 Form Relation



살아간다는 것은 ‘관계’의 연속이다. 우리는 결코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때문에 대게의 사람들은 굴레를 쓴 말이 된 듯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 채 부자유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관계에 얽매인 삶. 그 부자유함은 우리를 금세 지치게 만들기도, 열정을 사그라뜨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관계 속에서 정녕 행복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땅거미가 내려앉기 전, 하늘이 어슴푸레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할 즈음 그를 만났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과 함께 기분 좋은 칭찬을 곁들인 첫 인사가 건네져 왔다. 그렇게 시작한 그와의 대화에 마침표를 찍을 무렵, 나는 앞서 가졌던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어떤 일이 관계 속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겠냐마는 ‘협력’을 바탕으로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기획해야 하는 일. 그럼에도 그는 부딪히고 깎이는 것이 아닌, 오히려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 그. 지금부터 디렉터 최안나가 만들어가고 있는 그의 단단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좋아한다면, 즐겨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공자의 이 유명한 격언을 두고 누군가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최안나’, 그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는 것 같다. 그는 디렉터로서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온 마음을 다해 그의 일을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미술관은 지금처럼 다양한 직군이 자리 잡기 전이었기 때문에 콘서베이터니 큐레이터니 하는 단어들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컨택부터 작품 수집, 전시, 연출, 운송, 컨디션 체크, 사진 촬영까지 모든 일에 보조 인력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에 참여하다 보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그는 그 과정이 즐거웠다고 말한다. “그때는 도슨트라는 개념도 없었어요. 어느 날 보조로 텍스트를 쓰는 작업을 하는데 저보고 작품을 설명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누군가에게 이 작품의 과정을 설명해 주는 일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재미를 느끼고 나니, 비로소 ‘이런 일을 하고 싶다’,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전까지는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선임 선생님께 이런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여쭤봤죠.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물론 큐레이터로 바로 서는 과정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석사를 마치고도 미술관에서 1년 이상 근무해야만 하는 조건상, 빠른 코스를 밟더라도 20대 중후반을 넘길 수밖에 없다. 해외연수라도 다녀오면 어느새 30대에 들어서고 만다. 남들은 일찌감치 자리 잡고, 차근차근 경력을 쌓는 시기. 남들에 비해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그만두고 다른 것을 찾아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꾸준히 걸어 온 지 19년이 지났다. 그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고민 없이 ‘만족감’이라고 답했다. “인생에 있어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그 일에 대한 높은 만족도. 그렇게 자기 일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좋은 기회는 생기기 마련이더라고요. 강의도 할 수 있고, 프로젝트 의뢰도 들어오게 되고. 고민은 절로 사라지죠.”






철새처럼 날아오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 ‘목표’


땅거미가 내려앉기 전, 하늘이 어슴푸레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할 즈음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왜인지 모를 설렘이 밀려온다. 그럴 때면 우리는 오늘을 마무리하고, 다가올 내일에 대한 새로운 다짐을 해보곤 한다. 인생에도 그런 시기가 있다. 마치 연극의 1막이 내려가고 2막이 오르기 전과 같은.


큐레이터로의 첫걸음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시작됐다면, 디렉터로서의 첫걸음은 두만강 축제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이것이 인생의 세 번째 서막이었다고 말한다. “중국 두만강 문화 관광 축제 국제예술전을 큐레이팅하면서 중국 도문시에 방문하게 됐어요. 그곳에서 국적만 다를 뿐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 동포들을 만나게 됐죠. 굉장히 훌륭하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이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의 뿌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고 싶었다. 주제를 잡고 기획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뚜렷한 사업 목표와 기대효과를 가지고 다양한 사람, 기관과 협력을 꿈꾸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에 잠깐 외국에 있을 때 인연이 된 친구들과 만나 필리핀의 아이들과 같이 봉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됐어요. 이렇게 다양한 프로젝트와 외교 순방 전시를 하다 보니 점점 규모가 커졌고, 저 혼자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그렇게 문화교류연구소가 탄생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문화교류연구소는 ‘사람’과의 네트워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그 사람과 잘 맞지 않으면 최선의 결과를 내놓지 못하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교류는 그 무엇보다 우선시 된다. 제3세계나 지금껏 함께하지 못한 어떤 기관,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계기에 문화교류를 하고 싶은 것이지, 오로지 전시와 프로젝트를 위한 수단으로써 그들과의 만남을 기획하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 그의 곁엔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함께 작업했던 선생님들이 먼저 연락해 주시는 경우도 많아요. ‘어디야? 우리도 데려가. 우리가 그냥 가서 할 테니까. 가서 재밌는 거하고 오자’하고요. 이렇게 네트워크를 하다 보니 저에게 장소성이 그렇게까지 국한되어지지 않더라고요. 감사함이 많죠. 이 일을 하면서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다음엔 뭐하지?’ 생각하는 즐거움이 생겼다. 어느 곳에 가든, 하고 싶은 것이 마구 떠오른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아지고, 하고 싶은 사람도 많아진 것이다. 방향과 목표가 뚜렷이 정해져 있는 삶. 함께 그 길을 걸어주는 동료가 있는 삶. 아, 그것만큼 행복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진정한 만족에서 찾아오는 ‘행복’


우란문화재단과 함께한 우란이상 시각예술 연구 프로그램 <만남_시공간의 재현> 프로젝트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사람’과 마음껏 함께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한국 원로작가와 작업해보고 싶다는 꿈을 이루는 계기이기도 했다. “연구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과정이 특히 중요했어요. 작가와 만남의 자리를 가지고, 그들과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만나고, 얘기하고, 고민하는 그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많이 가까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사람 중심’이라는 문화교류연구소의 궁극적인 방향과도 딱 맞아떨어진 거죠. 그래서 기뻐요. 개인적으로 만족도도 굉장히 높고요.” 물론 다른 전시를 할 때도 많은 리서치를 하지만 오로지 작가의 시선에 집중하고, 자주 만나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거친 후, 작가에 대한 애정도 더욱더 깊어졌다. 그에게 이번 프로젝트는 물질적인 지원보다도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관계할 수 있는 지원을 받은 것 같아 의미가 크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을 기회가 오더라도 결국 상대방과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느냐는 오로지 그에게 달렸다. 상대방의 단점을 보려고 하면 끝이 없다. 정답도 없다. 그래서 그는 상대방의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한다. 관계란 매우 상대적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다가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존중이 바탕에 깔린 소통은 관계를 더욱더 단단하게 만든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잖아요. ‘~하는데, ~하면 어떨까?’라고 말한다거나, 반응을 정말 열심히 해준다거나 사소하지만 그렇게 소통하려고 노력하면 전시장에 디스플레이하는 것조차도 너무 재밌어져요.” 그는 디렉터를 하면서 ‘협력’이라는 단어의 힘을 비로소 깨달았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그렇게 그는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제 이메일 주소에 ‘안나해피’라는 단어가 들어가요. 이메일 주소대로 행복하게, 좋은 사람 만나면서 문화교류 하고 싶어요. 문화라는 게 예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잖아요? 김밥 하나를 만들어도 김밥에 오방색의 한국 문화가 보이듯이. 그래서 제가 필요로 하는 곳에, 제가 잘하는 거, 함께 할 수 있는 걸 계속해서 하고 싶어요. 목표사업이 정확하고 좋은 일을 계속하다 보면 지위 막론하고 좋은 사람이 찾아와요. 같이 하자면 할 수 있는, 뜻이 통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점점 모여드는 것 같아요.” ‘해피’. 그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스스로 행복을 찾는 사람. 그 행복을 다시 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그니까.


관계에 얽매인 부자유한 삶. 그 속에서 어떻게 ‘안나’, 그가 ‘해피’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 스스로가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끊임없는 관계의 연속 속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 답을 나는 마침내 그에게서 찾았다.


글: 노연주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