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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서정화의 Go to Reverse




 눈에 느껴지는 인상. 첫인상(-印象)은 소통의 시작이다. 애써 말을 꺼내지 않아도, 무언가의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인상만으로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가늠해 보곤 한다. 그것이 첫 소통이 되는 것이다. 작가 서정화. 그의 첫인상은 ‘부드러움’ 그 자체였다. 조곤조곤한 말투와 그에 걸맞은 부드러운 목소리, 그리고 소탈한 웃음까지. 그런데, 아는가. 도도하고 새침해 보이는 사람이 구김살 없이 잘 웃을 때, 혹은 한없이 부드러워 보이는 사람이 그 속에 단단함을 숨기고 있을 때, 그 반전이 선사하는 매력이 더 깊다는 사실을. “가구디자이너 서정화입니다.” 그 무엇보다 담백한 첫마디에 단박에 그의 부드러움 속에 숨겨진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꾸밈도, 거짓도 없었다. 그는 어떤 질문에도 허투루 답하는 법이 없이 없었다.



멈추지 않고 흘러갈 테니


모든 일에 정답은 없다. 그래서 늘 불안을 떠안고 산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삶이라는 배에 몸을 내맡기고 그저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참 쉬운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하겠다. 그것은 결국 ‘삶’과 ‘나’에 대한 굳은 믿음에서 비롯되니까. 


가구디자이너, 누구나 꿈꾸는 흔한 직업은 아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냐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취업’. 남들보다 나은 그림 실력에 입시 미술을 준비했고, 취업을 위해 디자인을 선택했다. 그리고 취업이 어려워 방향을 틀었다. 그게 가구디자이너로의 첫 발걸음이었다.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리서치나 해외작가 작품, 관련 서적을 많이 보게 됐어요. 근데 그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재미있으니 집중력도 좋아졌고. 제가 잘하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그게 작가로서 작품을 만드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네덜란드로 유학까지 떠났다. 큰 용기였다. 그러나 이 역시 이유는 간단했다. ‘경험’. 독립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가구와 오브젝트를 계획해서 제작‧전시하고 판매까지 하는, 그러니까 그와 비슷한 성격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당시 네덜란드에 많았고, 그들이 나온 학교가 바로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Design Academy Eindhoven)이었다. “인터넷으로 보는 정보가 끝이다 보니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직접 가서 경험을 해보자, 이게 나중에 밑천이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텅 빈 모니터, 점하나 찍혀있지 않은 하얀 종이,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괴로움을 느낄법한 이 모든 것들이 그의 현실이다. 끊임없이 다음 작품을 고민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이니까. “가장 어려운 게 이거에요. ‘다음에는 뭘 만들지?’하는 고민. 커피잔 하나를 만들어도 ‘튼튼해’, ‘예뻐’, ‘잘 팔려’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또 다른 걸 만들어야 하니까요. 이 부분 때문에 공허했던 적도 많아요. 무얼 해보고 싶은지 발견하고,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을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천재’가 아닐까요?(웃음)” 작업 활동에 있어 주제 의식이 뚜렷하지 않으면 요점이 흐려진다. 그래서 키워드를 잡고, 타이틀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덜란드에서의 유학은 그 방법을 습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아인트호벤 대학원에서 컨텍스추얼 디자인과를 전공하면서 주제 의식을 계속해서 연구했다. 디자인 컨셉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리서치하는 일련의 경험은 그가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작업하면 계속 새로운 화두가 던져져요. 환경적인 것일 수도 있고, 조형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문화적인 것일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을 흡수하면, 계속해서 재생산해 낼 수 있죠.”






이상과 현실, 그 경계


Don’t Touch. 전시회에 가면 어김없이 볼 수 있는 이 짧은 경고 문구에서 우리는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만지고 싶은 욕구’를 깨닫고는 한다. 눈으로 보는 것에서 그칠 수 없는, 촉각으로 느껴보고 싶은 욕구. 그는 어느 순간 이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연한 계기로 한 대학교 건축과 수업을 맡게 되었어요. 그때 수업을 준비하면서 주하니 필라스마의 <건축과 감각>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서 후각, 청각, 촉각으로서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때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감각에 대해 영감을 받았죠.”


디자이너는 무언가를 만들 때, 항상 소재를 사용해야 하므로 그것에 대한 관심은 매우 기본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소재를 어떻게 ‘가공할 것’인지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어울리는 소재를 찾고, 그 소재를 어떻게 함께 ‘둘 것’인지에 초점을 두고 작업을 진행한다. 그러면서도 기능적인 면을 놓치지 않는다. 이상적인 형태와 함께 가구의 본질에 충실 하는 것이다. “소재를 선택할 때는 시각적인 느낌과 기능적인 강도 두 가지를 모두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구에 적합한 소재를 찾아야 하고, ‘적합’하다는 것은 미학적으로만 좋은 게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튼튼한 것이니까요. 무게를 버틸 수 있으면서도 다이내믹한 구조를 만들어 내기 쉬운 소재가 가장 좋죠.” 적합한 소재를 찾는 과정이 녹록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물음에 그는 단박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용할 수 있는 소재가 굉장히 한정적이라서 새로운 것을 찾으러 무리하게 다니지는 않아요. 무리한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거든요. 그냥 디자이너로서 작업을 하다 보면 계속 어디론가 흘러가잖아요. 방방곡곡 소재를 판매하는 곳에 가봐야 하고, 다른 작가 전시도 가보고. 그러다가 소재로 사용하기에 괜찮은 게 있으면 메모해 놓고 시점이 맞으면 그다음 작업을 거치게 되는 거죠.” 소재가 자연물일 때는 특히 많은 변수가 생긴다. 특별한 형태와 크기를 염두에 두고 드로잉을 해도 찾지 못하면 쓰지 못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가구의 소재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현실, 자연물이 모두 제각각이기에 제한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깨닫고 있으며,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일 뿐이다. 집착이 최선의 결과는 아니므로.






또다시 흐른다


삶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당연히 물살에 몸을 내맡긴 그 역시 멈추지 않는다. 소재를 찾기 위해 무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체’를 뜻하지 않는다. 이번 우란문화재단과 함께한 기획전시 <전환상상>은 그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완초공예는 2013년부터 가구에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재작년에 모델링을 해두고 시간이 되면 만들어야지 하면서 다듬고 있었는데, 우란문화재단을 통해 완초공예가 주된 소재였던 이번 전시에 보여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6주. 매우 빠듯한 작업 시간이었다. 설계하는 과정에서 기능적으로 어떻게 구현해 낼지 플랜도 없던 상황이었기에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구상했던 작품이 1:1 크기로 구현됐을 때의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트랜스폼이 잘 되는 ‘완초’라는 소재 자체에 집중했다. 시각적인 효과, 질감, 그리고 조금 더 발전시켜 펼치고 말아둘 수 있는 동적인 구조를 이용한 가구를 제작했다. 물론 아직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많다. 그러나 시간과 기술이 있다면 충분히 더 좋은 퀄리티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맛보았다. “이 시리즈를 조금 더 발전시킬 생각이 있어요. 직접 강화도에 가서 장인과 함께했던 작업이기 때문에 더 의미 있기도 하고요. 완초라는 질감을 이용한 기능적인 가구의 구현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 가지 또 다른 방안도 구상중입니다.”

  

가구뿐만 아니라 인테리어와 조명 디자인에도 발을 넓혔다. 그의 작업실 한 켠에 세워져 있는 기다란 직사각형 조명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그것이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목적이었단다. “영화도 잔잔한 스토리의 영화가 있는 반면, 급진적인 스토리의 영화들이 있잖아요. 급진적인 스토리의 영화는 재미를 주기가 훨씬 쉬워요. 잔잔한 영화는 그런 깊이를 주기가 어렵죠. 디자인도 마찬가지에요.”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념을 뛰어넘는 구조물은 ‘무엇에 쓰는 걸까?’, ‘왜 이런 구조가 나왔을까?’하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리고 궁금증은 곧 작품에 대한 주목으로 치부된다. 제한된 구조 안에서 틀을 허물어 내는 방식의 작업을 위해 그 역시 다양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그가 내리는 ‘가구’에 대한 정의가 궁금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집을 뺀 나머지 모든 구조물이라고 생각해요.” 꾸미는 말조차 없는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 명쾌한 답일 것이다. 그에게 빈집은 캔버스다. 어떤 그림도 그릴 수 있는 새하얀 캔버스. 그곳에 그의 고민과 수많은 시도가 고스란히 녹아든다.


대게 처음 형성된 첫인상은 변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와의 대화를 마친 후, 그것이 나의 단단한 선입견이었음을 깨달았다. 한없이 부드러울 것 같지만 담백하다. 이상적일 것 같지만 현실과의 경계를 정확하게 구분 짓는다. 내재된 열정을 마구 발산할 것 같지만 자신의 필요만큼 절제할 줄 안다. 아는가. 도도하고 새침해 보이는 사람이 구김살 없이 잘 웃을 때, 혹은 한없이 부드러워 보이는 사람이 그 속에 단단함을 숨기고 있을 때, 그 반전이 선사하는 매력이 더 깊다는 사실을.





글: 노연주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