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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오세혁의 On the Road, 그 여정 위에 서다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연출가를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웬 팔방미인이 나왔다. 글 쓰고 연출하는 건 기본이고, 뮤지컬도 하고, 인터뷰도 하며, 칼럼도 쓰고, 학교에서 아이들도 가르친단다. 그래도 극단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니, 가장 먼저 극단 걸판의 예술감독 타이틀로 그를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극단 걸판 창단 이후, 거리에서의 마당극, 대학로 무대 위에서의 극작과 연출, 배우로 신나게 ‘날아’ 다녔다. 현재는 뮤지컬의 매력에 눈을 뜨는 바람에 당분간 이 장르에 정진할 계획인데, 그 와중에 틈틈이 사람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칼럼도 쓰는 중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의 삶을 충실하게 즐기면서도 장르와 방식의 경계를 정하지 않고, 하고 싶은 얘기에 어울리는 옷을 입을 줄 아는 사람. 어느 한군데 고여 있지 않으려 늘 새로운 길로 떠나는 이 시대 진정한 방랑자 오세혁. 지금 그는 어느 길 위에 서 있을까.



이야기꾼 오세혁의 이유 있는 방랑


바야흐로 오세혁의 숨 가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공연을 마치고, 우란문화재단에서 뮤지컬 <나무 위의 고래> 트라이아웃 공연까지 성공리에 끝냈다. 그 후 조금은 쉴 법도 한데, 차기작인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까라마조프-대심문관> 연출과 연극 <보도지침>의 작연출로 여전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다양한 경험이 쌓일수록 그는 더욱더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사람, 새로운 도전. 






점수에 맞춰 대학을 들어가는 아주 평범했던 그의 삶이 자신만의 특별함을 찾게 된 것은 한 연극을 보고 난 후였다. 연극을 보는 내내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오고, 무대 위의 배우는 우스꽝스러웠지만, 누구보다 진지했다. 그리고 연극이 끝난 후엔 약속이라도 한 듯 극장 안의 모두가 이 연극이 말하고 싶은 바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이었던 오세혁은 다짐했다. 저런 이야기를 하리라. 심각한 이야기도 재밌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즐겁게.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평생을 등에 업고 가야 할 외로움 대신, 함께 할 사람들을 끌어모아 극단 걸판을 창단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필요한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기꺼이 가서 마당극을 풀어놓았다. 필요하면 작가도 했고, 연출도 하고, 배우도 했다. 그렇게 거리 위 마당극에 익숙해졌을 때, 그는 자신이 거리 위, 헐벗은 세상의 이야기에 고여 가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그저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을 뿐, 어떤 곳, 어떤 장르의 전문가가 되고 싶진 않았기에 대학로 소극장 무대로 자리를 옮겼다. 늘 그랬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신명 나게 풀어놓다가, 그곳에, 그 방식에 고여 가기 시작한다고 느끼면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 순간을 충실히 즐겼다. 



길 위에 머무는 행복한 순간


방랑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그는 계속 옷을 바꿔 입을 뿐이다. 정의와 용기, 사랑과 진실, 거짓과 미움 등 세상에 필요한 수많은 이야기는 물론, 자기 자신에 관하여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이야기들을 각각에 어울리는 형태로 풀어놓는 것이다. 때론 연극으로, 때론 뮤지컬로, 때론 독백형식의 인터뷰와 칼럼으로. 







그리고 지금 그가 가장 관심 있는 옷은 뮤지컬이다. 우란문화재단 ‘시야 플랫폼: 작곡가와 작가’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되어 시야 스튜디오로 연계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연출을 맡게 되면서 뮤지컬에 눈을 떴다. 대학로 소극장 시스템 안에서 다시 또 익숙해지고 있음을 느끼던 시기였다. 처음 하는 장르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뮤지컬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시야 스튜디오 개발작인 김경주 시인의 원작을 동명의 뮤지컬로 각색한 <나무 위의 고래>도 마찬가지. 고여있지 않기 위해 방랑하지만, 어느 길 위에 머무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즐겁고,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는 그이기에 트라이아웃 공연 단계에서도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시행착오의 과정이 있었기에 다음 뮤지컬 작품인 <라흐마니노프>도 자신감 있게 해나갈 수 있었다. 현재 그가 가장 공을 들이는 차기작도 음악극이다. 작년, 극단 걸판에서 선보였던 명랑음악극 (초연연출/재연연출 최현미)이후, 이번엔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명랑음악극 <허클베리 핀>을 준비 중이다. 이번엔 작가로 참여한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가 높다. 



혼자가 아닌 함께 걷는 여정


하지만 언제 또 그가 걷는 길 위의 풍경이 바뀔지는 오세혁 본인조차도 모른다.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놓을지 늘 고민하고 탐구하는 그이기에. 그러나 새로운 것을 찾아 늘 방랑하는 그에게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람.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그 누군가들, 또,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들이다. 이야기꾼이 되어 여정을 시작한 후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오세혁은 이야기꾼답게 또 그들의 이야기를 독백 형식의 인터뷰로 채워나가는 이른바 ‘독백만인보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그가 만난 모두의 이야기가 모이면, 그것은 다시 어떤 이야기가 되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길을 나설 방랑자 오세혁의 원동력이 될 것이 분명하다. 꿈은 단 하나, 자신의 이야기에 기꺼이 ‘나도 함께하겠다’며 동참해줄 동료들과 이 끝없는 길을 걷는 것.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인간관계가 참 어렵다고 답하면서도 그 어려운 걸 해내는 그의 곁엔 늘 함께할 동료들이 있으니, 우리는 좀 더 오래 그가 전하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