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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원 프로듀서의 Realize a Dream



한 소녀는 어릴 적 마법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경험했다. 간혹 하늘이 되기도, 땅이 되기도 하는 공간. 때로는 산이 되기도, 바다가 되기도 하는 공간. 소녀는 환상의 나라가 떠오를 때면 엄마의 손을 꼭 잡고, 한 손에는 아직 따뜻한 코코아를 든 채로 마법이 이루어지는 곳에 찾아갔다. “저에게 무대 뒤는 ‘매직’ 그 자체에요. 아직까지도 환상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거든요. 그 힘으로 계속 버티고 있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이 들 때면 백스테이지에 가요. 그곳에서 바삐 움직이는 배우와 스태프들을 보며 마음을 치유하죠. 이제는 실체를 다 알아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대는 여섯 살 때 본 느낌 그대로예요. 마치 마법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 그 느낌.” 차분한 어투에서 묘한 흥분이 묻어 나왔다. 어린 시절, 그리고 지금의 무대 뒤를 곱씹어보던 그는 무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흥분된다고 했다. 상상만으로도 열정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것. 석재원 프로듀서에게 그것은 ‘공연’이었다.  



매 순간 꾸는 꿈, 그리고 실현


“저는 꿈을 꾸는 사람이에요.” 그의 첫 마디는 강렬했다.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건네는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단단함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쉽게 벗어둘 수 없는 짐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외로운 길 위의 나에게 건네는 위로일, 꿈. 그에게 꿈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어쩐지 잠시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서 몽롱함이 배어 나왔다. 마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샅샅이 헤집어 보는 듯 보였다.


그는 공연 기획자로 사는 삶을 ‘선택’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어린 시절 무대의 환상을 경험한 뒤로, 계속해서 공연과 무대라는 꿈을 꾸었을 뿐이다. 어릴 적 빼곡히 적어 내려간 일기장은 매일 꿈을 꾸고, 매일 꿈을 이루는 그의 모습을 거울처럼 여과 없이 비추고 있었다. 무대에 대한 열정, 모든 감정과 오감을 마취시켜 다른 것에는 기웃거리지 못하게 하는 어릴 적 그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도 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공연 속에서 자랐다. 그것은 여덟 살이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 하듯, 성인이 되면 직장을 다녀야 하듯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남들보다 더딘 속도일 수도 있지만, 그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오로지 ‘꿈’ 하나로. 석 프로듀서는 오늘의 인터뷰 역시 꿈을 갱신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저는 매일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고 있어요. 물론 지금도 꿈을 이루는 중이고요. 오늘의 인터뷰 역시 제 인생에 한 획을 긋는 거라고 생각해요. 공연을 통해 이런 기회를 얻게 됐다는 것. 오늘 또 하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네요.” 인터뷰를 위해 만진 머리카락이 어색한 듯 웃어 보이는 모습이 마치 열여덟의 싱그러운 소녀 같았다. 아직도 새로운 꿈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그 어린 날의 소녀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관객과의 소통, 열정에 불을 지피다.


그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내맡겼다. 억지로 빨리 가려고 하지도, 느리게 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무정한 시간의 흐름. 그러나 더께는 쌓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 꾸게 된 새로운 꿈 때문일까.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어서 제 공연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때가 되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삶을 살아오면서 제 안에서 하고 싶은 소리가 생겨나기 시작했거든요. 저의 과거와 현재, 일상과 경험이 토대가 되어 관객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만들어진 거죠. 이 메시지는 제가 정한 게 아니에요. 계속해서 제가 성장하는 동안, 그러니까 삶을 살아오는 동안 저도 모르게 일어나고 있었어요. ‘살아가야만 한다.’, ‘살아갈 만하다.’는 삶의 위로. 그리고 제 내면의 소리. 그것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무릇 큰 동력이 있으면 인생 전체를 움직일 수 있기 마련이다. 그는 삶을 뒤흔들 동력을 찾았다. 그리고 동력을 얻은 순간 그의 열정은 다시금 불타올랐다.


그는 자신을 온전히 내보인 첫 작품으로 <비(BEA)>를 꼽았다. 오랜 기간 묵혀왔던 것이라 그 애착도 컸다. 독립 프로듀서로서 처음 내딛는 발걸음이었지만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으로 큰 어려움 없이 즐기며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석 프로듀서는 막이 오르기 전 생각했다.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이 5초간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기를. 펑펑 울지는 않지만,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기를. 그리고 마침내 공연을 마쳤을 때, 대부분의 관객이 그가 원하는 몸짓과 표정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생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제가 하는 일은 관객들과 만나는 일이에요. 그래서 관객과 감정의 교류가 딱 맞았을 때, 상상도 못 할 만큼 좋아요. 희열을 느끼죠.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의 시처럼 어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도 역시 흔들릴 때가 있다. 공연이라는 것이 늘 그를 꼿꼿이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그럴 때면 공연 후기를 찾아본다. 관객이 느낀 감정, 관객의 반응, 그리고 전하고자 했던 바를 고스란히 전달받은 관객의 이야기를 두 눈으로 확인하며 그는 이 길을 가는 것이 맞다고, 내 선택이 옳았다고, 그렇게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미래, 그 불완전함에서 오는 불안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멀리 있어 희미하며, 마치 안개에 둘러싸인 듯 뿌옇기만 한, 미래. 미래란 결코 완전할 수 없다. 1인 제작사 혹은 독립 프로듀서는 이를 가장 절감한다. “‘과거는 가득 찼고, 현재는 매우 바쁜데도 미래는 늘 불안하다.’ 요즘 저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이에요.” 기획사의 말단 사원, 기획팀장, 극장장 그리고 1인 제작사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CreativeTable Sukyoung)의 대표까지 석 프로듀서는 무수히 많은 길을 걸어왔다. 그 길을 걸어오며, 결단코 공연이 싫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의 삶은 공연 그 자체였다. 그러나 1인 제작사로서의 공연은 녹록지 않다. “가장 최근에 진행한 <하이젠버그>라는 작품은 처음으로 어떠한 지원 없이 제가 모든 걸 책임져야 했어요. 보통 일반 제작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번 작품에서 저 역시 겪은 거죠. 너무 어려웠어요. 금전적인 문제로 컴퍼니 매니저, 제작감독, 공연 전 MD 판매까지 제가 혼자 다 해야만 했어요. 그러다 보니 중압감 때문에 공연에 참여하는 스태프, 배우들과 공연 자체를 즐기지 못했죠. 스스로 공연에 가깝게 다가가지 못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좋은 환경에서 이 작품을 다시 관객과 만나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회의 획일성에 타협하지 않고 본인의 개성을 살리는 것,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해 나가는 것. 어쩌면 세상을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그가 미래의 불안을 품에 안고도 독립 프로듀서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현실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이제는 그런 점을 이용하려고 해요. 계속해서 꿈을 꿀 거고, 계속해서 공연을 할 거예요. 공연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제게는 즐거움이고, 저의 꿈은 모두 그 안에서 이루어지니까요.” 타협 없는 삶을 살기는 사실 그리 쉽지 않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기 위해 타협하고, 굴복하고, 합리화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그가 더욱 빛난다. 타협 없는 삶이 외롭고 고독한 길이 될 수 있음에도 나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느린 걸음일지라도 묵묵히 꿈을 따라 걷는 그의 모습에 왜인지 모를 미소가 지어진다. 석재원 프로듀서의 내일의 꿈은 무엇일까. 그의 꿈을 온 힘을 다해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