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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 작곡가의 Grow Up





‘음악의 세계와 조우한 첫 순간’이 작곡가 이선영에게 건넨 첫 질문이었다. 누구에게나 내가 몰랐던 어떤 세계에 매료되어 아, 난 여기서 헤어나올 수 없겠구나 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이 질문을 시작으로 작곡가인 그녀에게 그녀만이 가진 음악 세계에 대한 질문공세를 펼칠 생각이었다. 어떤 음악을 작곡하고 싶은지, 작곡할 때는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심지어 요즘엔 어떤 음악을 듣는 지. 물론, 질문지에 충실하게 질문을 던졌고, 그녀는 그에 대한 답을 성실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 자리를 빌어 그러한 질문들이 그녀를 규정하기엔 너무나 초라한 질문이었음을 고백한다. 작곡가 이선영의 대답엔 ‘작곡가’ 이선영이 아닌 작곡가 ‘이선영’이 있었다. 음악의 세계에 매료되었지만, 사로잡히기 보다는 음악을 통해 새로운 세계, 혹은 몰랐던 세계를 찾아나서는 그녀. 그래서 지금부터 그녀의 음악 이야기가 아닌, 음악을 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볼까 한다.



음악을 타고 다른 세계로 떠나자


먼저, 첫 질문을 던졌으니, 그에 대한 대답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음악의 세계와 정면으로 조우했던 첫 순간, 그녀의 나이는 고작 7세. 88개의 제한적인 건반에서 느낀 자유로움을 느꼈던 그녀는 8살엔 악보를 그릴 줄도 모르면서 머리로, 손으로 기억해가며 ‘작곡’을 시도했다. 그것이 전부다. 그 후, 대입 입시를 거치고, 방송음악이라는 다른 선택지를 경험하고, 뮤지컬 음악조감독으로 5년을 보내고, 마침내 자신의 작품들을 쏟아내기까지 ‘음악’이 작곡가 이선영의 인생에서 무척 중요하고 소중한 키워드가 되었을 뿐이다.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지고, 볼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으며,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통로, 그것이 바로 그녀의 음악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그녀가 음악으로 들여다보는 세계들을 만나보자. 그녀가 현재 발붙이고 있는 가장 큰 세계를 꼽으라면 단연 ‘뮤지컬’이다. 연출이든, 작가든, 배우든 누구든 함께 이야기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작품을 함께 나누면 나눌수록 완성되어가는 과정이 고단하면서도 고단하지 않다. 작중 인물의 삶을 음악으로 그려나가는 일이 쉽진 않지만, 그 삶이 관객에게 전하는 울림은 작곡가 이선영의 삶에도 많은 반성과 고민을,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작곡가 이선영이 그렇다. 안주하지 않고 흐르는 삶, 그리고 혼자보다는 모두를 위해 흘렀던 그런 삶들에 늘 마음이 쓰인다.






누군가를 위해 울렸던 목소리


현재 그녀가 장우성 작가, 박소영 연출과 함께 하는 ‘목소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단순하지만 정확하고,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마음에 와 닿는 노래들이 있다. 어느 촛불집회장에서 들었던 가수 양희은의 ‘아침이슬’이나, ‘상록수’가 그렇다. 뮤지컬 넘버를 쓰기 위해, 누군가의 삶을 노래로 이야기하기 위해 거쳐야 했던 수많은 과정을 뒤로하고, 이렇듯 단순하지만 정확하고 꾸밈없는 곡으로만 그들의 삶을 전할 수 있다면, 그 힘이 얼마나 클까. 이런 고민에서 시작한 목소리 프로젝트는<태일>이라는 첫 작품을 탄생시켰다. 곡을 쓰고, 무대 위 태일의 드라마를 함께 만들어가며 이선영 작곡가는 바라고 또 바랐다. 잊혀지기엔 아깝고 안타까운 목소리들,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살았던 목소리들을 사람들이 한번 쯤 다시 기억해주기를.






그것은 비단 태일뿐만이 아니다. 개인의 행복과 만족감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어쩌면 더 이상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타적이고 희생적이었던 삶들을 계속 발견해나가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염원이다. 사실, 우란문화재단은 이런 그녀의 진가를 진작 알아봤다. 음악이 가진 가치도 중요하지만, 잊혀져가는 가치를 음악으로 살려줄 수 있는 힘이 작곡가 이선영에게 있음을 본 것이다. 그래서 2014년 <작곡가들> 콘서트를 그녀에게 제안했다. 그 인연으로 2015년 시야 플랫폼 <작곡가와 작가> 프로그램에도 참여한 그녀는 <레드북>이라는 좋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번 목소리 프로젝트 <태일>도 우란문화재단과 함께 했는데, 그녀가 음악으로 전하고 싶어하는 따뜻한 울림이 세상에 퍼지기를 함께 기도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언제나 큰 힘이 된다. 그 힘으로 냉정한 현실 속에서 어쩌면 빛을 보지도 못했을 작품들을 안심하고 써내려갈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 잘 살고 싶어요.


그녀가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되뇌이는 것은 단 한가지다. ‘나를 믿자’는 것. 어떤 이야기가 ‘작곡가 이선영’을 통해 음악으로 표현될 때, 좋은 필터가 될 수 있도록 내가 믿는 것들을 믿자고 말이다. 하지만, 급하지 않게 천천히 나아갈 생각이다. 계속 변해가는 생각들과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날 수 있도록, 그렇게 자신 또한 성장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