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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기 사진작가의 Fade In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꽤 오랫동안 그와 나눈 언어들이 몽롱하게 주변을 떠다녔다. 안개처럼 뿌옇고, 확실하지 않은, 그리고 단정지을 수 없는 모든 것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그의 몽롱한 세계를 굳이 어떤 말들로 의미 부여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이 페이지에서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를 치열하게 찍고 있는 그를 그려보고 싶다. 아직도 내가 어떤 사진을 찍는지, 그리고 찍고 싶은지 알아가는 중이라는 사진작가 홍철기. 그 과정과 답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과연 답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그와 그의 사진을 통해 우리는 어떤 세계를 만날 수 있을까.





너와 나의 관계를, 그 의미를, 이야기를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세상엔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나 자신부터가 그렇다.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확신한다 하더라도 그 확신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 것인가. 사진작가 홍철기가 바라보는 스스로의 모습과 세상의 모습엔 이런 불명확하고 불완전함에 대한 불안이 녹아있다. 어떤 것에 대한 사진을 찍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피사체와 자신의 관계, 그리고 사회의 관계를 자신의 기준으로 정립하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이 과연 나의 기준이 맞는지, 사회의 통속적인 기준이나 시선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첨예하고 냉정한 자기검열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여태까지 무심하게 세상을 지나쳐왔던 삶에 태도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에 발맞추지 못하고 느리기만 했던 자신이 그 안에서 놓치고 있던 관계와 그 의미들을, 그래서 단편적일 수밖에 없던 이야기들을 좀 더 다각도로 들여다보며 자그마한 연결고리라도 찾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관계의 균형과 균열, 그 틈으로


그래서 그가 찍은 사진엔 실제 피사체보다 더 실재같은 고민들이 무수히 깃들어 있다. 예를 들어, 공간을 찍어보자. 그 사진을 포토샵으로 수정하게 된다면 더 이상 그것은 실재가 아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사진 속 공간은 수정 요소에 따라 기존의 공간이 가지고 있던 어떤 의미를 선명하게 부각시킨 또 다른 실재가 된다. 홍철기 작가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의 어디까지가 옳은 것인지 아니, 옳다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의미가 갖는 관계들을 어디까지 정립해야 하는지 늘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고민은 그의 작업을 이끌어나가는 힘이기도 하다. 작업으로 인한 고민들과 고민을 통한 그의 시선과 생각, 이것을 다시 작업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는 힘 말이다.



홍철기 <스크랩을 위한 스크랩>


하지만 단 하나 확실히 하고 싶다. 그는 자기만의 독특한 감각과 시선을 찾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서 생겨나는 이슈를 통해 시대의 풍경을 바라보지만, 이런 시선 또한 사회적인 경험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배제한 자기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싶은 것뿐이다. 시대와 나 자신의 균형을 잃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시대와 나를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 없도록 하는 균열에 무감각해지지 않는 것. 아슬한 그 틈을 놓치지 않고자 늘 더 생각하고, 고민한다.



실체를 ‘담는다’


그가 이렇게 고민 많은 사진작가이기 때문에 몸이 만드는 문화를 동경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란문화재단의 우란초대전과 우란기획전을 촬영하면서 홍철기 작가는 만드는 과정이나 사용 용도가 직관적일 수밖에 없는 많은 공예품을 만났다. 그리고 그 공예품을 만든 사람들의 목적과 의도, 손짓을 생각했다. 생각과 결과물이 고스란히 일치하는 작품들이 주는 느낌들이 즐거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뿐, 그는 다시 자신의 언어로 피사체를 파고든다. 자신의 사진에 어떤 특징을 부여할 수 있는지,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좀 더 이러한 몸의 문화를 향유하고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인지. 


그도 알고 있다. 사진은 결국, 볼 수 없다는 것을. 실체를 눈으로 직접 본다한들 그 존재 자체를 온전히 느낄까 말까인데, 실체를 담은 사진에서 온전히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몸으로, 손으로 실체를 직접 만드는 문화는 실체를 담는 사진과는 느낌이 참 다르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언어를 묵묵히 지킨다. 시간도 음향도 담기지 않은 오로지 단면의 작품으로, 자신이 동경하는 몸의 작품들을 다시 새롭게 담아낸다. 결국은 각자의 예술을 존중하며 또 다른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가까이, 돌아보라


요즘 들어 그는 자신이 직접 맺을 수 있는 관계에 대해 소홀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항상 가까이 있는 것들로부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사회가 개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동화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스치는 것들을 쉽게 속단하고 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이다. 그렇기에 다음 작품은 자기 삶 속에서, 자신이 주체가 되어 오브젝트를 담아볼 생각이다. 가까이에서 돌아보는 사람들, 시간과 공간, 물건들을 담아내다 보면 불명확한 세상 속에서 찾고자 하는 자기 자신과 안개를 한풀 걷어낸 세상이 보이지 않을까? 그의 다음 작품에서 꼭 그 선명한 세상을 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