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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천휴 · 작곡가 윌 애런슨의 The Musical, 참 따뜻한 위로
2018.10.10.

‘복잡하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웃는 듯 울고, 우는 듯 우는 무대 위 배우들의 열연이 그랬고, 마음은 아픈데 왜인지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그랬다. 노래는 또 어땠는가. 일상에서 우연히 스치지만 오래 마음에 남는 문구들처럼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여러 가지 것들이 한데 뒤엉켜 혼란스럽기만 하고, 정확하게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없어 버거울 때 쓰는 이 단어가 무대 위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실체로 펼쳐지니 그게 곧 위로가 됐다. 생각해보면 제목부터가 그랬다. ‘어쩌면’ 해피엔딩이라니. 희망이 품은 슬픔을, 절망이 가진 의외의 빛을, 그래서 복잡한 우리네 삶을 이토록 잘 알아주는 말이 또 어딨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진심을 읽었다. 휴&윌, 그리고 윌&휴. 지금 뮤지컬 계의 가장 핫한 콤비지만, 그런 세상의 관심일랑 제쳐두고 오직 삶의 다양한 빛깔을 무대 위로 끌어내기 위해 오늘도 참 많은 고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의 진심을 지금부터 전한다.
휴&윌의 윌 애런슨, 윌&휴의 박천휴
소개부터가 참 기분 좋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상대방을 자신의 앞에 세우고, 자기는 뒤로 빠진다. 이러니 ‘참 좋은 사이구나’ 라는 걸 느낄 수밖에. 국적도 다르고 성장 배경도 다른 두 사람이 이런 ‘좋은’ 사이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다. 둘은 참 비슷했으니까. 한눈에 서로의 예술적 취향이 같다는 걸 알아봤고, 각자의 세계를 형성한 음악과 소설과 영화를 나누며 단순히 ‘비슷한’ 것을 넘어서 닮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여기, 이곳. 장난은 아니었지만 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이, 그저 함께 곡을 썼던 것이 그들 작품의 첫 시작이었다. 이미 한국에서 작사가로 활동했던 휴가 가사를, 윌이 팝 멜로디를 붙였고, 또 어느 날은 윌이 만들었던 뮤지컬 곡에 휴가 가사를 넣었다. 그리고 진짜 뮤지컬 작업이 시작되자, 이미 뮤지컬 작곡가로 활동하던 윌이 휴를 추천했다. 둘은 서로를 동업자라고 부르지만, 이쯤 되면 소울메이트가 아닌가.
많은 부분 취향이 같지만, 특히 그중에서도 영혼이 닮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같다는 것이다. 세상은 행복과 슬픔이 공존하는 곳. 슬프지만 행복하고, 행복하지만 애틋한 애매모호한 것들이 뒤섞인 ‘진짜 세상’을 향해 그들은 삶의 시선과 방향을 나란히 하고 있다.

어햎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슬픈데 행복하고, 행복한데 애틋한, 그래서 많은 이들을 울고 울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휴 와 윌의 이런 삶의 시선과 방향이 우리를 위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창작 뮤지컬에선 드물게 관객의 애정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담은 ‘음악회’도 진행할 수 있었다. 휴 와 윌은 지난 6월 우란문화재단에서 진행한<어쩌면 해피엔딩 음악회>에서 직접 MC를 맡았는데, 무대 소품부터 진행 전반을 디렉팅 하며 본 공연만큼이나 특별한 시간을 관객에게 선물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햎’을 사랑하는 관객들에겐 배우들뿐만 아니라 휴와 윌, 두 사람의 존재도 큰 의미였기에, 그들의 노력이 더욱 빛을 발해 아주 특별한 음악회를 만날 수 있었다. 작품과 창작진, 배우들, 그리고 관객이 같은 마음으로 즐겼던 잊지 못할 <어쩌면 해피엔딩>의 추억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휴와 윌은 지금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이야기나 노래의 색깔, 규모 등이 <어쩌면 해피엔딩>과는 많이 달라질 예정. 하지만, 삶이 가진 다양한 면모와 말로는 다 전달할 수 없는 달콤 씁쓸한 여러 감정들을 무대로 형상화해 보여주고, 들려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란문화재단 시야 스튜디오를 거쳐, 배우의 입을 통해 텍스트가 비로소 ‘대사’가 되었던 트라이아웃 공연, 그리고 대명문화공장에서의 본 공연, 뉴욕공연준비, 음악회와 올해 11월까지 진행된 앙코르 공연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그 시간에서 단 한 번도 잊지 않았던 ‘진심’을 <어쩌면 해피엔딩>과는 또 다른 이야기로 들려줄 것을.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쌓인 경험은 한 층 더 성숙하게 우리에게 닿아와 진한 위로와 따뜻한 응원을 전해줄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슬프지 않을 수 있게
하지만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단언컨대, 그들은 작품을 만들면서 단 한 번도 무엇인가를 ‘의도’한 적이 없다. 이쯤에서 웃겠지, 이럴 때 울겠지, 이러면 위로받겠지 하며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고 이야기를 이어 나간 적이 없단 뜻이다. 내가 좋고, 우리가 울컥하면 그게 바로 그들 작품의 시작이 된다. 관객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작품을 통해 동등하게 관계를 맺어 나갈 줄 아는 그들의 당당함이 참 부럽다는 말에 휴 와 윌은 이렇게 대답했다. ‘진심이니까요.’ 그래, 맞다. 관객들은 어떤 것이 ‘진심’인 지 볼 줄 아니까, 결국 그들은 ‘진심’으로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소망한다. 자신들이 언제까지고 이렇게 ‘진심’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기를. 그렇다면 실패하더라도 슬프지 않을 수 있다는 걸 휴 와 윌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 그들에겐 성공과 실패를 신경 쓰지 않는 그들만의 마이웨이가 어울린다. 그들의 실패조차 기대되는 복잡하고 애매모호한 팬들이 있으니 그런 걱정은 마시고 그들다운 뮤지컬을 만들어주길, 끝까지 응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