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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 김민수의 Stitches, 의식과 무의식의 자취들




그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본다. 미끄러질까 조심스레 눈길을 밟는 소리. 뽀드득 뽀드득 작은 보폭에 배어 있는 숨겨지지 않는 차분한 기대감. 그 고요한 흥분감이 들린다. 이성과 감성의 배합에 가장 적절한 비율이 존재한다면, 아마 그의 말소리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가 스스로의 작업에 대해 소개해놓은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생산하는 대상은 물리적 공간을 가져 담거나 감싸는 실용적 물건이 되거나, 빛을 담는 사진이 될 수도, 글과 그림을 담는 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무언가를 담는 그릇. 즉, 기(器)가 될 수 있는 물건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토록 신중해 보이는 그가 경계 없이 자유로이 만든 물건은 분명 합리적이면서도 풍부한 감수성이 잘 보관된 물건이리라. 지금 여러분의 소반 한 상을 잠시 비워주기를 부탁해본다. 김민수라는 사람을 담아낸 고운 그릇을 낼 참이니.



실용을 빚어내는 메이커


그의 브랜드 Continued Container는 뭔가를 담거나 덜어낼 수 있는 공간을 가진 그릇, 기(器)의 작업이 연속된다는 뜻이다. 그는 어떤 물건에서든 ‘담는다’는 의미를 발견한다. 우리 몸의 세포도, 우주도, 모두 그릇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대학시절 도자기를 전공하면서 자연스레 담는다는 것에 대해 오랜 고찰을 해온 셈이다. 하지만 그릇 형태만을 만들지는 않는다. 최근 그는 다양한 섬유를 활용한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 하고 있는 작업은 의미에 비해 가볍다며 쑥스러운 듯 말했지만, 사실 그가 섬유에 올려내는 작은 한 수 한 수는 그가 말하는 담는다는 것의 의미에 가까워지는 자취들이다. 여기서 잠시 ‘담는다’는 것에 대해 부기해야 할 것 같다. 그가 말하는 ‘담는다’는 것은 무거운 사상이나, 우리의 생활과 먼 이야기는 아니다. 작업물 역시 실생활에서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실용적인 물건이다. 특유의 스티치 디자인을 살린 머플러, 삼베로 만든 휴지케이스, 명주로 만든 보타이. 모시 원단을 이어 만든 요와 이불. 담기는 대상은 신체의 일부가 되기도, 휴지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작품을 만드는 작가라고 여기기보다는, 물건을 만드는 제조업자에 가까운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게 작품을 살펴보다가 최근 작업에서 실용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자연의 율동과 사람의 감각을 담다


지난 8일부터 열렸던 우란기획전 <율동감각>에서 그는 두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한옥 대청마루에 거는 커다란 조각보와 창에 거는 발. 전통공예를 재조명하고 현대적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전시인 만큼 그는 이 작품이 사용될 공간으로 한옥을 선택했다. 오래전 가보았던 도산서원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을 떠올렸다. 퇴계의 철학과 정성이 깃든 곳. 서당의 설계도와도 마찬가지인 ‘옥사도자’를 퇴계가 직접 그려, 불승에게 건축을 맡겼다는 사실이 이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김민수 메이커는 도산서당과 같은 규격의, 같은 맥락의 공간이 자신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 산다면 무엇을 담고 싶을지, 또 이 공간에서 어떤 맥락의 실용성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결국 빛을 담기로 했다. 옷을 수납하는 것도, 음식을 담는 식기도 아니지만, 사람의 생활에 있어 어쩌면 가장 실용적인 것. 빛이라는 자연이 생활공간에 만들어내는 율동과 그 속에서 사람이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여 실용의 의미를 발견한 것이다.


도산서당 대청마루인 암서헌의 기둥과 기둥 사이 간격에 맞춰 만든 조각보는 남향에 걸면 따가운 빛을 가려 적절한 채광을 유지해주고, 추운 겨울 북향에 걸면 찬 기운을 조금이나마 막아줄 수 있도록 구상했다. 서당 동편에 보이는 정원, 절우사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향하는 시선에 조각보가 방해되지 않도록 빛을 적절히 투과시켜주는 노방 원단을 사용했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 춤추는 빛의 리듬이 집에 드리워지도록. 또 다른 작품은 서당 안 퇴계 선생이 머물렀던 온돌방, 완락재의 창문 크기에 맞춰 만든 발이다. 발의 폭은 창문 크기에서 조금의 여백을 두어, 창문과 발 사이로 소슬바람과 빛이 드나들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있는 그대로의 빛의 밀도가 전해지도록. 그리고 상상했다. 온돌방에서 단잠을 자는, 작은 소반에 밥을 올려 먹는, 대청마루에서 친구와 이야기하는 생활의 움직임을. 절대적인 걸작이라 칭송받는 전통 예술 작품들. 그를 끊임없이 재해석하려는 상업적이고 비상업적인 시도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냈다. 전통 공예를 계승해야 한다는 강요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일상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우리네 삶의 방식 그대로의 움직임에 주시하는 것. 그리고 그 관찰과 고민을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로 자유로이 표현해내는 것.






눈 뜬 공상가의 기록들


그의 이야기는 종종 타인에 의해 이상적이라고 치부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선하고 올바른 구상들. 그래서 그 상상력이 형태화되는 과정이 궁금해졌다. 작품에 대한 더 구체적인 해설을 요청했다. 그러자 ‘제가 설명을 잘 못할 것 같아서 준비했는데’라며 책 한 권 분량에 가까운 종이 더미를 내밀었다. 작업의 모든 과정에서 생겨난 종이들을 모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촘촘한 모눈종이 위에 자유롭게, 그러나 반듯하게 그린 스케치들. 컴퓨터 대신 손으로 써내려간 작품 개요, 영감을 얻었던 책 속 구절을 필사한 것까지. 그 수십 장의 종이가 꿈꾸는 몽상가와 눈 뜬 공상가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 종이들 사이에는 이번 작품에 실제로 구현된 스케치도, 다음 작업에 꼭 해보고 싶다고 말했던 작업의 실마리도 있었다. 손을 움직여 생각의 눈을 뜨는 사람. 종이마다 스민 고민들을 스티치 한 수 한 수의 움직임으로 옮겨 그는 오늘도 진정한 의미의 생활 공예품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무엇이든 만져보시오


그에게 물었다. 언젠가 단독 전시를 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의 공간을 상상하는지. 어떤 물건들을 보여주고 싶은지. 그는 언젠가 온라인에서 봤던 전시를 떠올렸다. 점토(Clay)와 숙녀들(Ladies)에서 따온 클레이디스(Cladies)라는 도자기 작업 여성 듀오와 덴마크의 유명한 세라미스트 올레 옌센의 합동 전시였다. 2013년 코펜하겐 세라믹 갤러리에서 열렸던 이라는 제목의 그 전시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전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다. 작품을 만져서는 안된다. 아니다, 무엇이든 만져도 된다. 실제 그 전시에서는 오픈 당일 리셉션은 물론 전시기간 내내 음식과 식음료를 전시품에 담아 관객을 맞았다. 그는 생각했다. 실용의 관점에서 훌륭한 공예의 진가는 직접 사용해보면서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고. 그래서 언젠가 자신의 제품들을 직접 사용하며 즐기는 시공간의 전시를 해보고 싶다고.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양식에서 실용의 시각을 새로이 제시하는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동시에 선구적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김민수는 스스로를 제조업자, 메이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조’하고 있는 물건들을 보고,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는 생활공예 작가에 가까운 것 같다. 단순한 생활용품을 넘어 생활에서 아름답게 사용되는 작품. 언젠가 그의 작품을 직접 사용해보며 그의 새로운 관점을 들어보는 전시에 방문하게 되길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