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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감독 김남건의 Cue Sheet, 그 모든 보살핌





꽃차 좀 맛보세요. 따뜻할 때 마셔야 향이 좋아요. 차를 권하는 그의 한 마디에서 직감했다. 다정함으로 가득한 시간이 될 거란 걸. 관객 앞에 서기보다는 무대 곁에서 모든 것을 조율하는 사람이기에 인터뷰 경험은 많지 않다고 손사래 쳤지만, 이런 자리에 익숙한 듯 여유로워 보였다. 낯선 사람도 편안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그냥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다. 무대감독이 실제로 어떤 일들을 해나가는지 자세히 듣기 전까지는. 그와의 대화가 시작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무대감독에 대해 막연히 떠올랐던 거친 이미지가 구름 걷히듯 사라지고 선한 기운만이 선연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사라지자, 텅 빈 캔버스 앞에 선 듯했다. 순수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무대감독이라는 직업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처럼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묻기로 했다. 무대감독이라는 직업이 무엇인지, 무대감독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의 입에서 나오는 표현이 궁금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첫째도 인성, 둘째도 인성이에요” 차분하고 친절한 말씨였지만, 눈동자는 단호했다.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마음이 기술을 이긴다’는 그의 믿음에 수긍이 갔다. 공연 하나하나를 향해 쏟았던 그의 진심이 이 글에서도 부디 온전히 전해지기를.



착하고 착한 올라운드 플레이어


무대감독. 이름만 들으면 무대라는 공간만을 담당하는 사람 같지만, 사실은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 송무백열(松茂柏悅), 다른 이의 일이 잘되면 마치 내가 잘 된 것처럼 기뻐할 수 있을 만큼 진심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 경청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이 그에게 들은 무대감독의 직무다. 창작자와 배우, 참여자 모두를 진실하게 아끼고 사랑해야 그들이 원하는 부분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착함’은 무대감독의 필수 자질이다. 그는 스스로를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진심으로 걱정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내 일이 아닌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있다는 걸 그는 항상 유념하고 있다. 그래서 많이 노력한다. 언제나 진실할 수 있도록. 지나가는 작은 한마디도 소중히 여기고 마음으로 이해하면, 시간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내 일처럼 해결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공연 하나에도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분야의 문제와 고민을 그에게 털어놓는다. 그래서 거의 모든 포지션을 넘나들며, 누구에게든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콜링 하는 장면에 반해 무대감독을 하고 싶다고 지원하는 후배를 보면 그는 말한다. 콜링은 무대감독이 하는 만 가지 일 중 하나일 뿐. 연습실 청소가 첫 번째 일이라면, 콜링은 9992번째 일. 그사이의 어느 것 하나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일은 없다고.



관객석에서 백스테이지로


‘꿈은 변하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그를 무대감독의 자리로 데려다주었다. 어릴 적 장래희망을 끝내 이루고 성취감을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때때로 변하는 꿈을 좇아 끝없이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후자에 가깝다. 연극학과를 졸업했지만, 무대 안팎의 다양한 경험을 하며 꿈이 바뀌곤 했다.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극작을 공부했고, 극을 쓰다 보니 연기자가 멋져 보여 연기를 전공했다. 연기를 하다가는 연출자의 시각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호기심에 가득한 대학생활을 하던 어느 날 여타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군대에선 책을 많이 읽었다. 하루는 무대감독, 즉 스테이지 매니지먼트에 관한 해외 서적을 읽었다.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대학에서 1~2년 남짓 연극을 공부했는데, 무대감독이라는 직업의 존재를 그때 처음 알게 됐다. 그 책을 계기로 제대 후 대학 졸업 때까지 교내 모든 작품에서 무대감독을 도맡아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꿈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기회로 삼았던 덕분에 매 순간의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었다.






1994년 겨울, 12월 24일. 고3 대학수학능력시험을 갓 마친 학생 김남건은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했다. 당시 매년 연말이면 무대에 올랐던 인기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보기 위해서였다. 관객석에 앉은 그는 ‘언젠가 나도 이렇게 좋은 극장에서 저런 멋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10년이 지난 2004년. 무대감독이 된 김남건은 똑같은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무대감독을 하게 됐다. 당시의 감회는 남달랐다. 무대감독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지만, 공연을 대하는 시점이 관객에서 작업자로 변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놀라운 경험이었지만, 때문에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다. 10년이라는 기간에 마침표를 찍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슬럼프조차도 새로운 전환의 기회로 삼았다. 그로부터 10년 후를 상상해봤다. 그리고 결심했다. 단순히 기능적으로만 움직이는 무대감독이 되지는 말자고.



1~2초의 디테일, 그 희열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과 현재 무대감독의 개념은 많이 변했다. 예전의 무대감독은 작품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보다는, 공연 날짜가 가까워질 때쯤 큐 시트나 기술을 체크하고 공연을 진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지금은 공연 매니지먼트 내의 역할이 기술감독, 제작감독, 무대감독으로 세분화되었는데, 예전의 무대감독은 거의 기술감독에 가까운 역할을 한 거다. 그런 의미에서 김남건 감독 세대는 업계에서 축복받은 세대로 불린다. 공연문화가 발전하고 활성화되던 과도기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해외 레플리카, 라이선스 공연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원작의 해외 무대감독이 직접 방한하면 작품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그렇게 배운 노하우를 국내 창작 공연에 적용해보기도 했다. 가끔은 본인의 미학을 작품에 첨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진 않았냐는 물음에, 무대감독은 창작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상상력을 구현할 뿐 본인의 아이디어를 첨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신 가능한 범위에서 능동적으로 디테일에 신경 쓴다. 날마다 달라지는 배우들의 미묘한 호흡과 감성의 차이를 읽어내고 창작자들의 상상력을 최대한 구현하는 방향성 안에서 장면 간 전환의 박자를 1~2초씩 밀고 당긴다. 본인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차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완성도를 높였다는 희열을 느낀다.






창작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새로운 꿈


이제 그에게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창작 공연을 주로 하는 이들에게도 지속 가능한 공연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연계는 아직 창작 공연만으로는 극단 또는 프로덕션, 매니지먼트의 살림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실정을 털어놨다. 프리랜서 개념으로 일하는 공연계 종사자들이 공연을 하지 않는 기간에도 월급을 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일반적인 직업인들이 보장받는 권리를 정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가 꿈꾸는 공연계는 창작을 하면서도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고, 좋은 작품을 만들며 스스로의 삶도 풍요로워질 수 있는 모습이다. 우란문화재단과 네 차례 작업하면서 그 꿈을 조금 더 키우게 되기도 했다. 경제적인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것 외에도 중요한 것이 있다면 창작자의 상상을 지원해주는 것인데, 우란문화재단과의 작업에서는 ‘해서는 안되는 것, 꼭 지켜야 할 것’ 같은 ‘룰’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는 걸 만드는 과정에서 세상의 룰이 제한하지 않는 환경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음 세대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세대가 받은 시대의 혜택에 대한 감사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후배들이 더 좋은 조건에서 작업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2017년 김남건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10년 후의 김남건이 새롭게 꾸게 될 꿈은 어떤 멋진 모습일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