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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의 미학, 박창영∙박형박 장인





갓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잇는 부자 박창영 장인과 박형박 이수자. 박창영 장인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4호 입자장으로 60년 넘게 갓일을 해왔다. 큰 아들 박형박 씨는 아버지가 해온 일을 이어 받으며 갓 유물의 연구 및 복원과 함께 갓에 관한 이론을 체계화하고 더불어 현대화를 고민하는 일을 함께 해나가고 있다. 두 사람의 작업실이 있는 광명시에서 갓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갓을 만드는 공방에 들어서자, 어떤 숭고함이 느껴졌다. 대나무를 사람의 머리카락만큼 얇게 만들어 한 줄 한 줄엮는 과정을 잠깐 상상해봤다. 등받이 의자에 앉아서 하루 종일 갓의 미학을 창조해온 박창영 장인. 그는 건강을 위해 권투를 하며 갓을 만들어왔다. 본래 갓은 중간 재료(양태, 총모자)와 형태를 만들고 종류에 따라 다양한 재료로 꾸며내는 과정을 여럿이서 협동해서 만드는 노동집약적인 공예이나 갓 형태와 꾸며내는 과정(입자장)을 하는 박창영 장인은 현재 혼자서 완성하는 작업의 모든 걸 다 하고 있다. 갓일에 대해 그 무엇보다 인내심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젊은 친구들 몇 명이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일주일도 못하고 그만두더라고요. 일단은 갓을 만들려면 강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인내심이 강한 편이에요. 지금도 매일매일 작업을 합니다. 갓을 만들지 않을 때는 대나무 다듬는 일이라도 꼭 하려고 해요. 갓을 만드는 일은 끝이 없습니다.” 갓에 대한 수요가 한참 높을 당시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밤새도록 작업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했다. 1960년대만 해도 일상생활 속에서 갓을 쓰는 사람들이 꽤 있었으나 1970년대 이후 새마을 운동을 계기로 갓의 수요가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형박 씨는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5대째 갓을 복원하고 만드는 일을 함께 해오고 있다. “아버지께서 처음에는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으셨어요. 저도 중,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군대를 다녀온 후로 전공을 의상으로 결정하고 갓일을 배우기 시작했죠. 자료나 유물을 찾아보면서 갓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더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어요.” 갓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크기, 형태, 문양 등이 다채롭게 변화해 왔다. “75센티미터 너비의 갓을 쓰고 네 명이 모여 앉아 있으면 안방을 꽉 채우죠. 그게 바로 진정한 멋이라고 생각해요. 갓은 대한민국에만 존재했던 선비 정신을 담고 있어요. 당시 사람들은 갓을 자신의 신체 일부로 여겨서 다른 사람 집에 갔을 때도 잘 벗지 않았어요.” 



                         박형박(갓일_입자장)이수자



머리의 언어, 갓의 유교적 의미 


우란1경에서 12월 16일까지 열리는 열리는 2020 우란시선 <해가 서쪽으로 진 뒤에 As after sunset fadeth in the west;>에서는 두 사람이 집대성한 갓의 면면을 만나볼 수 있다. 조선시대 문무를 갖춘 양반의 일상 속에 자리했던 갓과 궁시를 통해 당대 추구했던 미감과 사회문화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기획된 전시이다. 이 전시는 “조선시대 남성들에게 ‘의관정제’는 어떤 의미였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갓은 유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머리의 언어’로서 실용성, 장식성 보다 유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전시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형태가 크고 높이가 높은 것은 조선 중 후기, 작은 것은 조선시대 말기, 백립은 주로 상을 당했을 때 쓰는 갓이죠. 주로 검은색 갓을 많이 썼지만 왕이 릉이나 사냥 등 야외로 나갈 때는 왕이나 당상관 3품 이상은 항상 붉은 갓을 쓰기도 했죠. 전시를 통해서 조선시대 전체적인 갓 종류를 다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갓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눌러 쓰는 모자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갓은 머리에 얹는 일종의 예를 갖추는 ‘예모’거든요. 예를 갖춰서 쓰는 정말 근사하고 멋스러운 모자였어요. 어느 정도 햇빛도 가려 주는 실용성이 있었고, 갓을 통해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고요. 


현대에 와서 갓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더 쉽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박창영 장인 역시 수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갓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영화 스캔들 속에서 배우 배용준 씨가 쓴 것 역시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박창영 장인에게 가장 아끼는 작품이 무엇인지 물었다. “1988년도에 박쥐 문양을 활용한 갓을 재창조했고. 한 기업에서 구매하고 싶다고 연락이 온 적 있는데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는 갓인데 돈과 절대 바꿀 수 없는 작품이죠. 제가 50대 초반에 만든 갓인데 아마 지금 그때처럼 정교하게 만들라면 못 할 거예요.” 



 박창영(갓일_입자장)보유자



갓의 현대화를 고민하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통해 갓이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지며 더욱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킹덤>이후로 사람들이 갓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미국과 밀라노에서도 전시를 한적 있었죠. 외국 사람들의 눈에도 대나무를 가지고 갓을 만드는 일은 굉장히 대단해 보이는 거죠. 지금 대구박물관에서도 갓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어요. 사실 이렇게 갓만을 주제로 국립기관에서 전시가 제대로 열리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에요. 1988년도에 온양 민속박물관에서 조선시대 관모에 대한 전시가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처음이거든요. 고무적인 일이죠. 시간이 된다면 우란 1경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와 함께 비교해 보셔도 좋을 거예요.” 박형박 씨가 전시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앞으로 두 사람이 갓에 대해 그리는 빅 픽처는 무엇일까? 박형박 씨는 과거 존재하던 여러 유물을 통해 오히려 영감을 받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옛날 선조들이 만든 유물을 보면 뭔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시도해보지 않은 재료로 만들면 시행착오를 겪지만 굉장히 재밌기도 해요.” 최근에는 은사를 가지고 사립류의 갓의 반짝이는 모습을 차용하여 새로운 재료로 은빛 갓을 만들기도 했다고. 아버지가 그동안 숭고하고 완벽한 기술을 통해 전통을 복원하는 일에 앞장섰다면, 아들인 그는 아버지가 해온 일의 이론을 정립하는 일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갓에 대해 왜 현대화가 안되냐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제가 독일 함부르크 박물관, 미국 피바디 박물관에 소장된 대한제국 말기의 유물을 도록을 통해 본 적이 있어요. 그 유물의 형태가 찰리 채플린이 쓰던 모자의 형태와 같았는데, 그 유물은 갓을 만드는 재료와 기법으로 만들어진 모자거든요. 이미 갓이 현대화와 시대의 상황에 맞게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죠. 코로나가 끝나면 외국에서 제대로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두 장인이 만들어 낼 갓의 미래적 아름다움이 더욱 궁금해졌다. 


글: 김아름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