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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하는 아날로그 인간, 이대웅 연출가




공연 예술은 언제나 상상 혹은 예상 그 이상의 무엇을 보여준다. 그것은 관객에게도 창작자에게도 동일하다. 이대웅 연출가는 공연 예술이 주는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경험해온 사람이다.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다채로운 분야에서 그야말로 잡학 다식하고 유연하게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왔다. 조연출, 연출로 참여해온 작품 50여 편. 그가 지치지 않고 달려온 시간을 담담하게 따라가봤다. 

그는 시작부터 이 길이 자신의 길이란 걸 알아차렸다. “주체할 수 없는 끼가 제 안에 있다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어요. 사실 개그맨도 해보고 싶었고요. (웃음)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 표현해보고 싶은 욕망이 강했어요. 제가 가야 할 길을 빨리 찾은 편이죠. 마음을 정한 후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고 지금까지 왔으니까요.” 혹자가 연출이란 게 뭐냐고 지극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그는 이렇게 답한다. “일본 연출가 스즈키 타다시가 연출가에 대해 환경 디자이너라고 말한 적 있어요. 그에 대해 저도 의문을 가지면서 지금까지 이것저것 다양한 것을 시도해보고 있죠. 저는 정형화된 것을 비틀어보는 시각을 항상 가지려고 해요. 호기심도 많고요, 기묘한 것에 끌리기도 하죠.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든 호숫가 위 백조처럼 끊임없이 운동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늘 해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좀 다를 텐데, 저는 코미디를 잘하는 것 같아요(웃음).” 이대웅 연출가는 그야말로 유희하는 인간에 가깝다. 특유의 ‘B급 감성’을 가진. “이제는 ‘B급’도 일반화된 세상이라 ‘C급’을 내놔야 하는 시대 아닐까요?”라고 너스레를 떤다. “마이너의 시선으로 메이저에 두 다리를 뻗는 것이 저에겐 흥미로워 보여요.





그는 공연의 영역과 경계에 갇히지 않고 누구보다 자유롭게 탐험과 실험을 펼쳐왔다. 극단 여행자와 프로젝트 그룹 만물상을 오가며 여러 가지 색깔을 만들어 왔다. 무엇보다 연극, 뮤지컬 음악극 등 각기 다른 성격의 분야를 골고루 경험해 봤다. 그에게 다작이 주는 이로움이 있는지 물었다. “뭐랄까 공연할 때 필요한 근육이 잘 만들어진 것 같아요. 공연을 향해 24시간 신경이 깨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경험에서 축적된 것을 통해 여기서 막혔던 것이 저기서 저도 모르게 풀릴 때도 있고요.” 11년째 몸담고 있는 극단과 프로젝트 그룹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극단 여행자는 2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지향하는 고유의 스타일이 있어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국화 시켜서 재해석한 작품으로 유명해진 극단이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여배우들이 주축이 되어, 12월 공연을 목표로 셰익스피어의 <베로나의 두 신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반면에 프로젝트 그룹 만물상은 좀 더 리버럴한 집단이에요. 우리가 해보고 싶은 것을 제약 없이 만들어보고 있어요. 코로나로 인해 지금 당장은 공연을 꾸리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해보고 싶은 것들에 대해 여전히 활발하게 창작의 불을 지피고 있어요.” 


도전과 실험은 나의 힘

이대웅 연출가의 이런 실험과 도전 정신에 힘을 실어준 건 우란문화재단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2016년 시야 플랫폼을 시작으로, 시야 스튜디오, 시야 플레이를 통해 2년간 개발된 음악극 <멘탈 트래블러>와2020년 7월 트라이아웃 공연으로 선보인 우란이상 <렛미플라이>에 연출로 참여했다. “저는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해요. 초반에 헛다리를 좀 짚기도 했었는데, 결국 그런 경험조차도 나중에는 큰 도움이 됐어요.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편이었는데 그런 것을 용인해 주었고 결국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오직 작품에만 신경 쓸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고 정말 이렇게 행복하게 작업을 해도 될까?라는 약간의 불안감마저 느꼈으니까요. (웃음) 연극도 뮤지컬도 아닌 음악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고민과 갈증이 해결된 시간이었어요.” 가장 최근에 참여한 <렛미플라이>에 대해 이 연출은 “가장 보편적인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황혼 로맨스”라고 소개했다. “지금 이 순간 혹은 앞으로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는, 우리가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모든 시간들이 어떤 유의미한 순간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담긴 그런 뮤지컬. 그가 뽑은 명장면이 궁금했다. “처음에는 주인공 추남원이라는 노인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극의 중간부터 추남원의 아내인 선희의 시각이 열리면서 전환점이 되는 장면이 있어요. 연습하면서도 너무 아름다워서 많이 울었어요. 공연을 만들어가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영역을 마주할 때 희열을 느껴요.”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며 동화적인 세계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물었다. “저의 작업에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있는 몇 권의 책이 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로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을 뽑고 싶어요. 소설을 구성하는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의 시각으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일종의 액자 소설이죠. 삶과 소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작동을 다루는 이야기인데 그 깊이가 굉장했어요. 지금도 알라딘에서 보이면 바로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한 만큼 좋아하고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에요.” 자신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준 작품으로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 철도의 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미완성 소설이기도 한데 당대에 변방에 있던 작가였으나 이후에 다시 재평가 받기 시작했죠. 시골 척박한 땅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을 벗어나지 않고 작품 활동을 했던 분인데, 이 작가가 남긴 시와 동화가 엄청나요. 어린 시절 이 사람의 책을 읽은 사람들이 자라서 당대 가장 위대한 작가가 되었으니까요. 대표적으로 아톰을 만든 데츠카 오사무도 미야자와 겐지를 존경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미야자와 겐지의 소설을 읽어보면 이분이 가진 고유의 맑은 심상이 정말 아름다워요.” 이대웅 연출가가 이런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세계에 끌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본능적으로 디지털 시대에 일어난 일들보단 아날로그 시대에 일어난 일에 관심을 두고 있는 편이에요. 저 또한 아날로그 시대 끝자락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아날로그의 산증인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커지네요.” 언젠가 뮤지컬이나 음악극 형식으로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리고 싶다고 그가 또렷하게 말했다.
글: 김아름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