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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oran People> 건축가 정이삭의 관찰과 실현




설계와 비설계 사이의 건축가 정이삭. 그는 조금 독특한 노선을 걸어왔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바라보지 않는 장면을 수집하고 새로운 이슈를 제기한다. 그는 건축가의 역할을 빌딩을 설계하고 짓는 것으로만 한정 짓지 않는다. 도시 관찰자, 건축 기획자, 소외된 도시와 사물을 복원하고 재조명하는 사람. 그를 연남동 붉은 벽돌의 가장 꼭대기 층에서 만났다.

건축가의 역할과 태도
건축사무소 에이코랩을 이끄는 건축가 정이삭. 그의 포트폴리오가 한눈에 펼쳐진 홈페이지에서 ‘전시(Exhibition)’라는 키워드로 검색되는 프로젝트는 총 29건이다. 건축과 도시 설계가 그의 가장 큰 뼈대이지만, 정이삭 건축가는 동시대 미술을 기획하는 '사무소(SAMUSO)'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아트 신에서도 활발한 작업과 협업을 펼쳐왔다. 그에게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첫 번째 작업 역시 예술인들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다. 2013년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대북선전마을에 있는 ‘민북가옥’을 리노베이션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남북 관계의 중요한 상징물처럼 남아있는 건축물에 공공적인 개입을 시도한 첫 작업이었어요. 그때부터 공공이란 개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후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연평도 도서관’을 만든 것을 기점으로 공공, 리모델링, 재생이란 키워드의 많은 작업을 이어왔다. ‘마장동 주민센터 리모델링’, ‘헬로우뮤지움 동네미술관’, ‘동두천 장애인 복지관 문화공간 조성’ 등 공공적 연구나 사회적 건축 작업 기회가 그에게 자주 찾아왔다.

건축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결정적 변화를 일으킨 건 2016년 <마이크로시티 랩>에서 노란 평상 작업을 하면서다. 오래된 골목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노란색 비닐 장판이 깔린 목조 평상을 평평하게 만드는 일을 하며 “과연 진짜 공공적인 작업이 뭘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건물을 만들거나 광장에 파빌리온을 만드는 행위만 공공적인 게 아니라, 사소하고 일상적인 사물을 조금 더 기술적으로 발전시켜주는 것도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건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시도해보려고 하지 않는 비어 있는 영역이거든요.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게 결국 공공적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노란 평상 작업을 하면서 저의 태도가 바뀌었어요.” 그가 던지는 다음과 같은 화두는 건축가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건축은 빌딩이 아니다. 건축은 하나의 정신 혹은 태도 같은 것” 건축가가 건물만 만드는 사람은 아니라는 그의 주장에 수긍하게 된다.



설계과 비설계 사이의 건축가
건축가 정이삭은 설계와 비설계 사이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고민하는 사람이다. “학부생 시절 제 컴퓨터의 하드 드라이브에 들어가면 설계와 비설계라는 폴더가 구분되어 있었어요. 설계 안에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건축에 대한 설계 내용을 정리해서 넣었고, 비설계 폴더에는 당시에 심심해서 찍어본 영상, 설치물 작업이 담겨 있었죠. 저는 건축가가 건축적인 작업뿐만 아니라 비설계 영역에 속하는 다른 작업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오기가 좀 생겼던 것 같아요. 그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건축가는 故 정기용 선생님. 대학원 시절 가르침을 받은 분이기도 하다. “선생님께서 공공적인 작업을 많이 하셨는데 그 가운데 무주에 목욕탕을 만든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마을에 진짜 필요한 프로그램을 건축가가 기획하고 구현한 사례이죠. 사회가 요구하는 걸 이해하고 제안해서 실현하는 일, 저는 이것도 중요한 건축 행위라고 생각해요.”

공간을 만드는 것 그 이상의 일, “공간의 감각을 만들어 내는 것” 또한 그가 생각하는 건축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너무 사소해서 주목하지 않는 것을 좀 더 건드려보고 싶어요. 사회가 원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슈를 말이죠. 누구든 말과 글로는 쉽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공공적인 생각을 형태로 만들고 건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래의 건축은 더 디테일하고, 더 마이크로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훨씬 더 잘게 쪼개서 아주 깊숙하게 세밀한 것을 건드릴 수 있어야 하죠. 그것이 앞으로 제가 하는 건축 작업의 목표이기도 해요.

정이삭 건축가는 도시와 미술, 예술 영역에도 적극적인 참여를 해왔다. ‘2015 서울 서울 서울’에 공동 기획자로 참여했고 2016년 제15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한국관 공동 큐레이터이자 작가로 활약했다. 또한 전시 공간을 설계하고 새로운 전시 방식을 시도하는 일에도 한발 앞선 노력을 계속 해왔다. 2018년에는 수원 화성의 공간 조직과 건축 구법에 착안한 독특한 설치 작업 ‘적층의 벽’을 선보였다. 기억에 남을 만한 전시 공간 디자인으로는 2016년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사회 속 미술 – 행복의 나라> 전시를 떠올렸다. 당시 민중 미술을 재조명하는 전시로 정이삭 건축가는 구조가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고, 신선한 반응을 얻었다. 올해 5월까지 우란1경에서 열린 <화이트 랩소디> 전시의 공감각적인 배경 역시 그의 손길이 닿은 공간이다. 디자인 콘셉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화이트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 무한대, 영속성을 포함하고 있는 관념적인 색이죠. 그런 무한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전시장 안으로 관객들이 들어오면 계단을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반복하며 수평선으로 수렴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율동감을 갖고 있는 이 세계가 영속성을 보여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어요.”





99의 미시사를 찾아서
그의 연남동 사무실 한편에는 이런 독일어 문구가 새겨진 가방이 놓여 있다. “부자들의 이익보다 대중의 이익을(Volks - bedarf statt Luxus – bedarf)“ 스위스 건축가이자 데사우 바우하우스 2대 교장이 했던 말이다. 친구가 출장지에서 우연히 보고 정이삭 건축가가 떠올라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 그 작은 문구에 건축가의 세계관이 얼핏 보이는듯했다. 그에게 영감을 주는 풍경 장소에 대해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평범한 일상에서 무언가 발견하는 걸 좋아해요. 여행을 가도 관광 지역보다는 ‘굳이 이런 곳을 왜 보러 가나’ 싶은 낯선 곳을 찾아가는 걸 즐겨요. 가장 번화한 곳에서 벗어난 주변을 돌아다니며 하수구, 쓰레기통 앞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도 하고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공간을 관찰하는 것이 좋아요. 이발소, 세탁소, 그 지역 사람들이 가는 식당, 찻집, 노동자들이 일하는 마을에 가면 저는 약간 전율 비슷한 게 느껴져요.” 그가 매일 발 디디는 에이코랩의 사무실은 90년대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한 건물 4층에 위치해 있다. 당시 집장사들이 빠른 시간 지어 올린 적벽돌 건물 위에 새롭게 한 층을 쌓아 올린 공간이다. “이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 할 때 집장사분들이 만든 원형을 최대한 살려서 복원하는 작업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아래층은 과거에 로컬 빌더에 대한 존중이고, 여기 저희 사무실은 동시대성을 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는 건물이에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물었다. “저는 계속해서 싸우고 싶어요. 너덜너덜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적인 합의와 요구 속에서 같이 뒤엉키고 구르면서 건축을 하고 싶어요. 진흙탕 속을 피할 수는 없어요. 아름답고 관념적이며 인간의 근본을 자극하는 훌륭한 건물을 만드는 것 만이 건축가의 일은 아니거든요. 상상 가능한 행복한 꿈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장애물을 넘고 넘어 얻은 절충점을 내놓는 것도 건축가의 역할이죠. 왜 거의 1도 안되는 소수의 건축 세계만 높게 평가받고 그것만 역사화 될까요? 그런 기념비적이고 멋진 건축 역사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아주 사소하고 부끄럽고 아름답지 않는 미시사도 한편에 분명히 존재해요. 저는 이것도 바라보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보이지 않는 작은 부분도 조금 더 낫게 만들어주는 것이 건축가의 공공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글_김아름

사진_황인철